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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매일연재 | 정재민 - 범죄사회 나는 오래전부터 참 겁이 많았다. 가끔은 얽매이는 것과 속박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법도 두려웠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동시에 언젠가 통제되고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살면서 겪어보기 어려운 일들이라는 것에서 오는 낯섦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늘 끊이지 않았다. 법과 가까운 판검사, 변호사, 경찰, 교수의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를 보고 범죄 사건을 다룬 뉴스와 TV 프로그램을 지나치지 못하고 살펴보곤 했다. 범죄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늘 자극적이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거나 악랄하거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가득했고 늘 그런 소식들이 보도의 1면에 가득 차곤 했다.. 2021. 10. 31.
스위치 매일연재 | 이혜미 - 테이블 위의 낱말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0월 맞이 새 시작으로 스위치 읽기를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처음의 작품으로 고른 건 금요일에 연재되는 이혜미 시인의 「테이블 위의 낱말들」이다. 이 이야기가 연재되는 금요일이라는 요일도 좋았고 그 시간과 작품과의 연관도 좋았다.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평일날 읽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에세이라니. 어쩐지 그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딱 작년 즈음. 그때부터 나는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여러 요리를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가장 활발하게 요리에 도전했었다. 그리고 내 손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조차 시간의 사치라는 걸 절감하게 된 이후로 그 기회는 점점 더 요원해져 갔다. 짧게 연재되어 가고 있는 몇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더.. 2021. 10. 17.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양정무: 벌거벗은 미술관(2021). Changbi Publishers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동네 도서관의 작은 전시관에서 봉사를 하게 되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교양을 듣게 된 이후, 「벌거벗은 미술관」을 만났다. 기존에 오래도록 해오던 실험실 일이 정리되자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고 여태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고개를 돌렸을 때 눈앞에 있던 기회에 손을 뻗었고 그렇게 미술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호기롭게 도전은 해놓고 오랜만이라 두근거렸던 면접장에서 집 근처의 작은 전시관을 자주 오가 봤다는 경험을 말했다. 봉사였지만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 말하는 말에는 저도 모르게 긴장되는 마음이 있었다. 어렵지 않게 합격을 한 후 처음 .. 2021. 9. 28.
호흡공동체 - 전치형, 김성은, 김희원, 강미량 전치형, 김성은, 김희원, 강미량: 호흡공동체(2021). Changbi Publishers 손끝에 어색하게 감기는 재생종이의 거친 질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주 느리지만 우리에게 다가올 더 큰 위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그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일들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체육시간은 물론이고 한 시간 가량의 점심시간, 짧은 10분의 쉬는 시간이 되기만 해도 밖으로 공을 들고나가는 애들의 모습을 봐왔던 내게 마스크를 끼고 체육을 배운다는 뉴스는 너무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날그날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일정 수치가 넘지 않아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아이들이라니. 에어컨조차 없이 선풍기가 다인 교실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요즘의 학교에선 공기청정기를 두는 게 기본이 되어간단다. 황색으로 색을.. 2021. 8. 31.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2021). Changbi Publishers 헤르만 헤세의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를 그림과 함께 읽는 시간 베란다에서 작게, 식물들을 키우며 사는 입장에서 표지부터 제목까지 반가움이 가득한 책이었다. 몇몇 소설에서나 이름을 보던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라 하여 그를 지켜본 누군가의 저서일까 싶었는데 무려 헤르만 헤세 작가 그 자신이 남긴 에세이라니. 이 정도면 말을 다한 것 아닌가.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나의 소박한 취향은 과학, 실용도서를 지나 소설에 입문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와 달리 예전부터 쭉 가벼이 마주하려 하는 것이 있다면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에세이보다는 수필이라는 말이 더 좋긴 하지만. 작가가 누구이든 간에 그들 자신이 .. 2021. 7. 27.
[국회도서관] 월간 국회도서관 06월호 - 메타버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패러다임 국회도서관에서 출간되는 월간 국회도서관 06월호 중 김지현 SK mySUNI 부사장의 특집 를 가져왔습니다. 김지현 부사장은 2020년 국내에 도래한 메타버스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말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VR/AR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습니다. 오래전 공상과학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술이 우리의 삶에 가까이 들어오게 된 것이죠. 이미 MZ세대에서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들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플랫폼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메타버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발을 거쳐온.. 2021. 6. 29.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 이동호 이동호: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2021). Changbi Publishers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세마리 돼지를 키우고, 잡아먹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조금은 당황스러웠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돼지를 직접 키웠다고 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채식주의자인 작가가 돼지를 키우고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는 말부터 풍겨왔던 강렬한 첫인상이 잊히지 않는다. 나와는 극명하게 정반대에 있는 시선이 곧바로 다가왔달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말 그대로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가졌던 채식주의자 작가가 돼지를 세 마리 키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생각들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도시 생활을 하던 작가가 귀촌을 하고 주변 친구들과 '대안축산연구회'를 맺어 활동하기까지 그가 겪은 생생.. 2021. 6. 29.
지독히 다행한 - 천양희 천양희: 지독히 다행한(2021). Changbi Publishers 「지독히 다행한」은 천양희 시인이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반복해온 기록이자 하루하루 일상을 빼곡히 채워놓은 증거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시인의 이야기가 마치 숨을 쉬듯 당연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이처럼 계속해서 일상을 고민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살아있는 새로운 것을 위해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시를 쓴다는 태도는 시집을 집어 든 독자의 마음도 일렁이게 만들었다. 책을 버리게 되는 것이 아까워 밑줄 하나 긋지 못하고 작게 붙여본 표지들이 더덕더덕 점철될 만큼. 항상 기대하고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어느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되풀이하게 되는 건 축복이면서도 슬픔인가 보다. 만개한 꽃은 언젠간 분명 떨어지고 보고 싶어 죽겠.. 2021. 5. 31.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사만타 슈웨블린: 피버 드림(2021). Changbi Publishers 자신의 엄마가 그러했듯,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러했듯 아만다는 니나와 자신을 연결한 실을 느낀다. 그 실은 자신의 아이를 안전한 상태에 있다는 구조 거리(Distancia de rescate)를 만들어낸다. 아만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고, 곧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피버 드림」 속 아만다는 최근에 읽은 「베이비 팜」의 제인과 닮았다. 누가 더 많이 기민하게 반응하는지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두 여인은 정말, 많이 닮았다. 아마 자신의 아이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 한시라도 곁에서 떼어놓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이 가장 큰 유사함을 만드는 것 같다. 「베이비 팜」 속 제인과 같이 아만다는 「피버 드림」의 내내 자신.. 2021. 4. 29.
꽃으로 엮은 방패 - 곽재구 곽재구: 꽃으로 엮은 방패(2021).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는 머릿속에서 끝없는 세상이 펼쳐지지만, 현실이 숨 차오르기 시작할 땐 그조차 사치일 것 같다는 생각. 눈앞에 흘러가고 있는, 흘러가버린 것들을 기록하기가 벅차 삶이 모자란 그런 것 말이다. 아마 곽재구 시인의 삶도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덧없이 반복적인 일상에서 덧없이 평범한 것들을 품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어딘가 촘촘하지 못하고 듬성듬성한 빈 구석이 있는 삶이다. 곽재구 시인의 삶은 나와 정반대에 놓인 듯하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향한 마음을 끝없이 토해가는 삶. 그 대상은 '시'다. 온전히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염원할 수 있을까.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 2021. 3. 30.
내일을 위한 내 일 - 이다혜 이다혜: 내일을 위한 내 일(2021).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언젠가 마법처럼 시작된 멘트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행동하고 실천에 나섬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는 거대한 불안과 흔들림 앞에 나는 너무도 쉽게 몸을 맡기곤 했다. 너무 높은 것만을 바라보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꿈은 높게 가지라고들 한다. 그 둘이 주는 괴리 사이에서 한층 더 불안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못된 심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되뇐다. 나만 이런 어려움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같은 고민을, 같은 힘겨움을 겪는다고. 남들에게 들으면 맥 빠지는 위로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 2021. 2. 28.
베이비 팜 - 조앤 라모스 조앤 라모스: 베이비 팜(2020).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종종 할리우드나 해외의 스포츠 기사들 중 출산에 대한 기사가 눈길을 끌 때가 있었다. 내겐 너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말 '대리모'가 자유분방한 그들의 삶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커리어를 위해, 몸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저 자연스럽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그런 일처럼 편안한 태도였다. 그러나 나는 고리타분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것들이 마냥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며 넘어가기에는 어딘가 마음 한편에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역시나 그런 것도 나의 보수적인 정신의 증명인 것일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 군소리를 늘.. 2021. 2. 28.
베를린이여 안녕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베를린이여 안녕(2015).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듯, 이렇게 마주하는 미디어가 종종 일깨우곤 한다. 「베를린이여 안녕」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작성한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에 이어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작가와 동명이인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라는 영국인이 히틀러 전후의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는 이야기다. 평범한 그네들의 모습인 듯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이 평범을 벗어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내겐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보다 무겁고 침울하기 그지없었.. 2021. 1. 19.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2015).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특별히 어떤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것에 어떤 목적을 가진 입장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한 해동안 창비의 많은 책들을 읽어왔고 그 모두 나의 선택으로 받은 것이기에 모든 것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고전 명작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별다른 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거쳐온 시간 중 만난 한 사람 덕분에 생긴 목표였다. 지금으로부터 정말 머나먼 옛날의 일이다. 기억도 잘 안나는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음악 선생님은 조금 독특한 분이셨다... 2021. 1. 4.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2019).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코로나에 일상을 점령당한 이후로 감정을 소비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일부에 속했다. 지금의 내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어딜 가든 모두가 공유하는 우울한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블루. 일전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지만 푸른색이 우울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푸른색의 한기가 그렇게 암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더블린 사람들」에게도, 블루가 도사린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 더블린 사람들로 묶여있다. 조금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임은 변함이 없다... 2020.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