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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헤르만 헤세

by 민시원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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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2021). Changbi Publishers

 


 

 

 

헤르만 헤세의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를

그림과 함께 읽는 시간 

 

 

 

 베란다에서 작게, 식물들을 키우며 사는 입장에서 표지부터 제목까지 반가움이 가득한 책이었다. 몇몇 소설에서나 이름을 보던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라 하여 그를 지켜본 누군가의 저서일까 싶었는데 무려 헤르만 헤세 작가 그 자신이 남긴 에세이라니. 이 정도면 말을 다한 것 아닌가.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나의 소박한 취향은 과학, 실용도서를 지나 소설에 입문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와 달리 예전부터 쭉 가벼이 마주하려 하는 것이 있다면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에세이보다는 수필이라는 말이 더 좋긴 하지만. 작가가 누구이든 간에 그들 자신이 사유한 것들에 대해 남긴 기록물들이 좋았다. 거창하고 웅장할 것 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헤르만 헤세를 만나보았다. 140년이 넘는 시간이 간극이 있는 두 인간이 만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지구 반대의 사람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수없이 많은 나무들 앞에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 시점이기도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주아주 오래된 숲 속에 서서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침 또 찰떡같이 이를 표현하는 우리네 말이 있다. 쏴아아- 하는 그런 소리.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줄기차게 노숙했던 취향 덕에 나는 그 바람소리가 만들어낸 평온을 그리도 좋아하곤 했다. 별거 아닌 듯 머릿속에 머물러있는 잡다한 모든 것들을 죄다 함께 쓸어내리는 듯한 시원한 소리였다.

 

 

 

 

 

 

 

 헤르만 헤세에게 나무는 늘 존경스러운 것이었고, 친구이자 삶이었다. 굳건하게 뻗어나간 뿌리와 막 피어오르는 생기를 가득 담은 우듬지까지. 우듬지라. 책의 중간중간 계속 등장하는 이 낯선 단어의 뜻을 다 읽은 뒤에야 찾아보았다.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라고 한다. 우듬지는 생그러운 푸른 생명력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했지만 낙하를 앞둔 오랜 잎들이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거센 바람에도 요동치지 않던 나뭇잎들이 산들거리는 바람에 가벼이 몸을 내맡기는 그런 곳이다. 내가 아주 약간 우울한 기분에 잠겼던 어느 날들에, 나는 베란다의 식물들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수롭지 않은. 특별할 것 없는 반복된 일상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는 강아지도 살며시 몸을 문대는 고양이도 아닌 정적이고 조용한 시간에 작게 말아 올린 잎사귀를 서서히 펼쳐내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은 것이었다.

 

 동양의 국가에 있는 내가 바라보는 나무들과는 조금 다른 나무들이 주인공이 된 에세이였다. 그럼에도 굳이 애써서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헤르만 헤세가 남긴 그들의 인상을 그대로 내 머리에서 되새기면서 자유로이 내 마음껏 그 모습을 그려내 보았다. 헤세의 기록은 어느 독자를 향한 친절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무와 함께한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경탄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적어둔 것이라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맞춰 나 역시 그의 소감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나이로 주름을 잡을 수 없는 나이이건만 헤르만 헤세가 남긴 아쉬움에 덜컥 조바심이 느껴졌다. 젊을 시절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로이 자연을 누볐던 순간들을 추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렇다 할 자연과의 접점을 남기지 못한 나의 지난 시간들이 한없이 뭉그러져 보였다. 나는 내 삶이 다해가는 어느 늙은 시절이 되어서야 자연으로 돌아갈 마음을 갖게 될 것인가. 어리고 젊을 시절에 나무와 꽃과 열매와 함께하는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오랜 세월이 흘러 후회로 남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생긴 조급함이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헤세의 눈에 투영된 나무의 생애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도 좋을지 작은 고민이 들면서도 방랑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게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라며 위안을 가져본다.

 

 책을 드는 순간 동안 머리를 푸르게 물들여준 헤르만 헤세와 한수정 식물화가에 감사했다.

 

 인상적인 장면들을 보여준 한수정 식물화가의 그림은 인스타그램(@soo_garden)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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