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를린이여 안녕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by 민시원 2021. 1. 19.
반응형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베를린이여 안녕(2015).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듯, 이렇게 마주하는 미디어가 종종 일깨우곤 한다. 「베를린이여 안녕」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작성한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에 이어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작가와 동명이인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라는 영국인이 히틀러 전후의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는 이야기다. 평범한 그네들의 모습인 듯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이 평범을 벗어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내겐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보다 무겁고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허둥대고 거짓 투성 이어도 함께 있음에 가벼운 태도를 유지한 노리스 씨가 없어서일까. 아니 그와 같이 허황되고 가벼운 분위기가 지워진 것이 아님에도 안도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공산당, 나치. 어느 곳에도 깊이 스며들지 않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마치 물에 뜬 기름처럼 책을 읽는 내내 부유하는 마음이었다. 분명 수렁 속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든 개입할 수 없다. 철저하게 이방인의 시선에서 볼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삶이었으니까.

 

 

 

 

 

 

 

 많은 것이 지겹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그냥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나는 실제로 조용히 숨죽이며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어떠한 특성이 만약 내가 사는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마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숨 쉬듯 자연스럽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타고난 천성임에도 말이다. 다른 아무런 조건도 따지지 않고 단 하나를 불온한 것이라 정하여 사그라들게 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스토리가 떠오른다.

 

 무엇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끔찍하게 분리된 가난과 부가 원인이 되어 참을 수 없는 증오를 만든 것일까. 정치적인 색채, 성향, 출신. 모든 것은 가름을 위한 지표가 되어 철저히 분리된 구조를 만들었다. 기세 등등하던 오늘의 목소리는 몽둥이와 주먹 아래에 당장 내일 사라질 것이기도 했고, 그 주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몇 주 전 함께 술을 마신 인물의 사망 소식을 모르는 이들의 입을 통해 드는 이셔우드의 심정은 어떠했던가. 목표가 확실하게 정해진 폭력을 바라보는 이들이 보인 반응은 다양했다. 총구가 향해옴에도 어찌할 방도가 없기에 하루하루 시들듯 사라지는 이들도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도주하는 이들도 있었고, 끝끝내 맞서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절대다수는 살아야 했다. 살아가기 위한 방식은 단순하다. 승자의 편에 서는 것.

 

"이렇든 저렇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인상적인 것은 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슈뢰더 부인 같은 인물이다. 그들이 살아감에 있어 신념은 괘념치 않은 것이다. 아니, 신념이 있다고 한들 그들에게 그것이 일 순위가 아닐 뿐이다. 살아감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건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건지. 우리는 당장 누군가 나의 집 앞에 찾아와 나를 끌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어딘가 여전히 잔재해있는 보이지 않는 압이 존재한다. 끝내 베를린마저 떠나야 했던 크리스토퍼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방관할 수밖에 없는 이방인의 위치에 만족했을까, 아니면 이방인으로 겉돌기만 했던 사회에 무력감을 느꼈을까.

 

 그 어떤 누구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며 진정으로 씁쓸해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지금도 크리스토퍼의 시각엔 불안정한 것으로 비칠지 어떨지 모르겠다. 다만 서두에 말했듯 지금 이 상황과 이 삶이 단순히 생겨난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한 번은 읽어봐도 괜찮지 싶다.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고 소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것이 영영 허구가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