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by 민시원 2021. 9. 28.
반응형

 

 

 

양정무: 벌거벗은 미술관(2021). Changbi Publishers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동네 도서관의 작은 전시관에서 봉사를 하게 되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교양을 듣게 된 이후, 「벌거벗은 미술관」을 만났다. 기존에 오래도록 해오던 실험실 일이 정리되자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고 여태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고개를 돌렸을 때 눈앞에 있던 기회에 손을 뻗었고 그렇게 미술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호기롭게 도전은 해놓고 오랜만이라 두근거렸던 면접장에서 집 근처의 작은 전시관을 자주 오가 봤다는 경험을 말했다. 봉사였지만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 말하는 말에는 저도 모르게 긴장되는 마음이 있었다. 어렵지 않게 합격을 한 후 처음 미술관에 방문하여 얼떨떨하고 쿵쾅대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또 다른 미술관을 향해 책을 펴 들었다.

 

 불과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고 온 기억이 생생할 때였다. 박물관이라 하면 어릴 적 가끔씩 방문했던 곳이라는 기억이 있고 가깝진 않더라도 어렵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미술관은 아예 처음 보는 낯선 무리의 손윗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을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과제를 하러 가는 김에 처음 홀로 방문하는 미술관이지만 제대로 모든 것을 느끼고 눈에 담아오리라 다짐하고 온 만큼 그날 하루는 뿌듯하면서도 모든 기운이 다하여 진이 빠지는 날이었다. 이제 막 미술을 향해 불안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서 경계와 호기심이 가득 차올랐다.

 

 

 

 

 

 

 

 양정무 교수는 이러한 어려움을 계속해서 깨어주려 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그는 우리가 완벽하고 위대한 것이라 단언하는 미술 작품들이 원래의 모습을 잃은 가짜 복제품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나서더니 굳게 다물어진 입매가 가진 이야기들, 혁명과 투쟁의 산물이 된 박물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미술세계까지 다양한 비화를 가득 풀어놓았다. 마치 고전 미술에 대한 가십 기사를 찾아보는 기분이었다. 당연하게, 으레 그러하듯 받아들여야 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라 '머리'속에서 이해하는 척하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친숙하게 미술이 다가오고 있었다. 과감하게 나신을 드러낸 그림과 조각들에 담겨 있던 신들을 향한 경배의 마음과 보는 이들마저 경직되게 하는 굳어진 표정들이 원래 그런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 속내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롯하게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서 지속되어왔을 것이라고 믿기던 미술도 실은 인간사의 흐름 속에서 주된 이야기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니 너무도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다. 과거의 세상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후대에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 천차만별의 평가가 난무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 역시 나만의 길로 이들을 이해해도 되리라는 어떤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의 말미에 다다른 마지막 장의 주제는 곧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다. 반복되어온 전염병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술의 자취에 대한 이야기였다. 손 쓸 틈 없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괴롭힌 전염병에 의해 죽음의 공포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사람들을 미술을 통해 마음을 달래려 했다. 더없이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구원을 찾아 그림을 가지려 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백,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또 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더없이 발전했다고 믿은 현대 과학과 의학이 손을 쓰지 못하는 재앙과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종교적 믿음을 강화하여 사태를 피하려 하기도 하고 이 모든 절망적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젊은 작가가 표현한 미디어 아트가 떠오른다. 어두운 공간에 공포심이 드는 기괴한 영상과 소리가 반복해서 틀어져 나오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는 더 큰 진보가 담길 수도 있고 끝없이 떨어지는 퇴보가 있을 수도 있다. 오래도록 반복되어온 지난날의 인간사와 미술사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는 지금 이 순간, 「벌거벗은 미술관」을 읽으며 미술사를 통해 인간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장벽을 마주하고 멀어지는 게 아니라 더는 미술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던 값진 시간이었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