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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변신 ˙ 단식 광대(2020). Changbi Publishers * 창비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오래된, 나무로 벽을 만든, 집에서 자던 날. 발밑에 들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핸드폰 플래시를 비춘 순간. 온몸에 타고 흐르던 소름을 잊지 못한다. 순식간에 온몸을 타고 흐르는 말 못 할 끔찍한 순간에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불을 켜니 곳곳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날 나는 벽, 천장, 어느 곳도 그것들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것을 절절히 알게 되었다. 도저히 잠들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빨리 아침이 와서 이 상황이 종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애써 눈을 감아보는 것밖엔 없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한 장소가 끔찍한 기억으로 버무려지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 2020. 9. 28.
어른들의 거짓된 삶 - 엘레나 페란테 엘레나 페란테: 어른들의 거짓된 삶(2020). 한길사 어른이 되는 것에 단계가 있다면, 내게 그 단계는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찾아오곤 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꼭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받아들이게 되는 사실들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는 정도. 마냥 행복한 것과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이 '일반'과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이 작고 좁은 울타리 안에서 곱게 키운 꽃처럼 자라기만 했다는 것을 순식간에 깨우칠 수 있는 강력한 충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같지 않은 너와 이들 사이에 순식간에 존재하게 된 - 사실 눈치채지 못했던 - 장벽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것도 .. 2020. 9. 23.
갈라진 마음들 - 김성경 김성경: 갈라진 마음들(2020). Changbi Publishers * 창비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으레 있는 행사로 여겼던 날이 있다. 국가 보훈의 날을 맞아 열심히 포스터를 그렸던 날. 학교에서는 꼭 1년에 한 번씩 통일을 주제로 한 포스터˙표어 대회를 열었고 나는 열과 성을 다해서 참여했더랬다. 모든 열심히 잘하는, 옳은 말을 하고 선생님들이 원하는 답만을 잘 골라서 말하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날들에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 같다. 교내 백일장에 글을 쓰고 물감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늘 그렇게 해온 기억들이 가득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그렸던가. 어느 먼 옛날 할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현충원의 모습과 하나 될 우리 대한민국과 북쪽의 모습을 조화롭게 그려냈었겠.. 2020. 9. 21.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 박단 박단: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2017). Changbi Publishers * 창비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프랑스'는 언젠가 여행을 가보고 싶었던 유럽 국가 중 하나였다. 영화 을 보기 전까지는. 친구와 함께 떠난 나라에서 즐거운 시간만을 상상했을 터인데 납치를 당해서 끔찍한 일을 겪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로망 속에만 잠겨있을 것이 아니라 저것이 진짜 프랑스의 모습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가 내게 다민족 국가로의 프랑스에 대한 생각을 심어주었다. 자유로운 낭만이 가득하기만 한 곳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곳도 현실이었으니까.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이렇게 마음의 거리를 두게 된 프랑스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었다. 열려있는 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 2020. 9. 14.
젊은 베르터의 고뇌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터의 고뇌. Changbi Publishers * 창비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괴로워하는 베르터를 보며 내내 생각했다. '「빌레뜨」의 브레턴 선생처럼 깨어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면 좋을 텐데.' 자신이 너무도 사랑한 그 모습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 깨닫는 순간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성이었다. 진심으로 주위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녀는 베르터가 가장 가치를 두는 소중한 것들의 현신과 같았으니. 내가 바라본 베르터는 그녀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계층에 중시하여 다른 것들을 하대하는 인간들은 질색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는 스며들어가길 원했다. 길에 앉아 가만히 아이들을 지켜보기를 좋아했고 기꺼이 어울려 있기를.. 2020. 9. 7.
윤곽 - 레이첼 커스크 레이첼 커스크: 윤곽(2020). 한길사 내가 생각하기에, '완벽한'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전에 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했던 말 같은데 '사랑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은 없을까'라는 생각. 이제야 조금 몸뚱이가 아닌 머리가 자라고 있는 나는 사랑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를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가슴으로 진정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냉철한 소시오패스 셜록 홈즈의 드라마에 사랑이 소재로 등장했을 때, 냉철한 음악가 베토벤에게도 사랑은 존재했다고 들었을 때, 실망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굳이 경계하고 들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내게 보이는 느낌은 이러한 것이었기에 사랑을 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어떤 관계가 깊어진 순간, 그리고 그게 깨어진 순간 .. 2020. 8. 31.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 최정동 최정동: 베토벤이 아디어도 괜찮아(2020). 한길사 어둠이 걷히고 발레단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타이즈를 입고 바닥에 드러누워있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간헐적인 동작이 선보인다. 원색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이들을 표현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태초의 것이, 날것 그대로라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두 손과 발로 땅을 짚은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원시적인 동물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괴한 모습에 질리다가도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지금도 어려운 이 발레 음악은 백여 년 전에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선율을 기대했을 관객들이 얼굴에 순식간에 경악이 들어차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줄줄이 곡에.. 2020. 8. 25.
에디 혹은 애슐리 - 김성중 김성중: 에디 혹은 애슐리(2020). Changbi Publishers 발랄한 진분홍빛 커버 현혹되기 쉬우나 속내는 그렇지 않다. 밝은 빛깔의 소설집 속에는 무시무시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 뒤틀린 듯 보이는 인물들이 자조적인 소리로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픈 것은 마음이다. 이웃의 이야기를, 친구의 이야기를 적어보면 이렇게 될까. 이상과 행복은 어려운 것이라지만 환상적인 이 글은 오히려 지독히 현실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 중에서도 지독히 아픈 현실이 가득하다. 정상의 범주를 말하기야 어렵다지만 잠시 두리뭉실한 그 정의를 빌려오자면, 메마른 비정상적 주인공들이 하는 조용한 호소의 모음이다. 슬픔에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행복에 되려 불안해하고, 아니 어쩌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2020. 8. 24.
빌레뜨 2 - 샬럿 브론테 샬럿 브론테: 빌레뜨 2(2020 개정판). Changbi Publishers 여러 재미있는 것들에 밀려 항상 후순위로 밀려나 있던 책에, 정말 오랜만에 말 그대로 푹 빠져있는 나를 가장 반겼던 건 엄마였다. 건드려도 대답도 않는 모습에 조용히 책 표지를 보고선 한마디 하셨다. "샬럿 브론테 책이면 초반엔 지루하겠네." 샬럿 브론테의 가장 유명한 작품 「제인 에어」를 읽어보셨던 엄마의 소감이었다. 그 말은 정말로, 초반의 빌레뜨를 읽을 땐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나쁜 의미는 아니고 섬세한 샬럿 브론테의 묘사가 낯설게 느껴져서일 거란 생각이 든다. 간결한 것을 즐기고 줄기차게 길어지는 것은 안 좋다 말하는 요즈음에 보기에 그녀의 문체는 한없이 예민하고 세세한 것들을 .. 2020. 8. 17.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연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2020). Changbi Publishers 조용히 혼자 읽곤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어서,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그런데 그 음악 때문일까. 이렇게 차분하고 먹먹한 기분이 드는 것이. 교양 다운 클래식 강의 도중 혼자 눈물이 날 것 같은 음악이었다.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 자락에 들었던 다. 흐르는 선율을 듣고 있자면 가까이 있지 않은 그 어느 존재가 그려지면서 괜스레 울적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 슬픈 마음이 차오르는 시간을 나는 좋아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특별한 이유를 정해두지도 않았으며 그냥 단지 그러고 싶어서. 슬픔에 기꺼이 잠겨 들곤 했다. 싱그러운 여름 기색이 만연한 표지를 봤음에도 이 음악을 고른 건,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내게 전해지던 시집의 시선 .. 2020. 8. 8.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1 - 아르놀트 하우저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1976). Changbi Publishers 표지를 볼 때부터 문득 떠올랐던 건 영화 이었다. 이렇게 빗줄기가 멈추지 않는 날들은 그와 달라 당황스럽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생각나는 그 영화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건 그들이, 올리버와 엘리오의 아버지가 연구하던 것들의 흔적을 이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존재한 기억이 없기에 과거를 쫓아보려 하고 우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그리는 것은 인간의 역사 속 계속 되풀이되어왔다. 지난날을 통해 배울 점을 찾고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도 다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무섭게 느껴지던 비너스.. 2020. 8. 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06). 한길사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보곤 한다.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어 묘하게 어긋나는 게 보이는 그런 사람. 이런 이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슴이 답답해져 올뿐. 아이히만은 그런 사람이었다. 딱히 나쁘다고 욕을 할만한 거리는 없다. 단지 고집 센 이 사람들을 대하기가 조금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묘한 부류의 사람을 법정에서, 그것도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범죄의 원인으로 마주하게 되면 어떨까. 재판정이 받은 커다란 과제는 이 무지한 인간을 우리의 도덕적 양심을 향해 계몽시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시행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따라 그의 .. 2020. 7. 29.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 유홍준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2018). Changbi Publishers 구강포의 푸른 바다, 아랫마을 밭이랑의 검붉은 황토, 보리밭 초록 물결... ... 진초록 동백잎 사이로 점점이 붉게 빛나는 탐스러운 동백꽃, 거기에 산새는 잊지 않고 타고나 땅 답사객을 맞아 주었다. p. 333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수능특강 문학 파트에서 보던 글 하나가 잊히지 않는다. 나의 지나온 삶 중에서 가장 많은 심적 변화도 있었고, 혼란했고,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인정하게 됐다. 딱 그 시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어떠한 시간이었다면 그저 스쳐 흘러갔을 글이라 생각도 드는 게 절묘한 그 타이밍에 맞아떨어져 이렇게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듯싶다. 그 글의 제목.. 2020. 7. 27.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똘스또이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 이반 일리치의 죽음 (2012). Changbi Publishers 그건 이반 일리치의 일이지 자신의 일은 아니다, 자신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p. 19 두려운 게 많은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에 이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게 죽음은 언제쯤 찾아오게 될까. 나는 죽음을 평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고 내가 어렴풋이 멀리 생각하게 되는 이런 시기에 불쑥 찾아오는 위협은 나를 더욱 그러한 공포로 몰아가곤 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은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짧은 분량의 글이지만 이 곳엔 빼곡하게 죽음의 묘사가 담겨있었다. 노쇠하여 얻은 질병에 병원의 치료를 통해 경감된 고통과 살아가다 안식에 드는 그런 죽음.. 2020. 7. 20.
안나 까레니나 3 -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 안나 까레니나3 (2019). Changbi Publishers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우리들에게 기차역이 남긴 인상은 그런 듯했다. 만남과 이별의 장소인 걸까. 시작을 하는 출발점일까. 나의 것을 털어내는 마지막일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 소설은 19세기 러시아를 담고 있지만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 게 삶과 사람의 이야기라 그런가 싶다. 아니면 지금도 곁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그런 건가. 멀지 않은 어느 날 뉴스를 보며 혀를 찼다. 누군가의 끝맺음이 살아있는 누군가의 고통을 만드니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그렇게 나는 떠나간 자리를 치워야 할 그 사람들이 가여워 화가 났다. 자신의 의지로.. 2020.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