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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by 민시원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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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타 슈웨블린: 피버 드림(2021). Changbi Publishers

 


 

 

 

 

 

 자신의 엄마가 그러했듯,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러했듯 아만다는 니나와 자신을 연결한 실을 느낀다. 그 실은 자신의 아이를 안전한 상태에 있다는 구조 거리(Distancia de rescate)를 만들어낸다. 아만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고, 곧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피버 드림」 속 아만다는 최근에 읽은 「베이비 팜」의 제인과 닮았다. 누가 더 많이 기민하게 반응하는지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두 여인은 정말, 많이 닮았다.

 

 아마 자신의 아이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 한시라도 곁에서 떼어놓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이 가장 큰 유사함을 만드는 것 같다. 베이비 팜 속 제인과 같이 아만다는 피버 드림의 내내 자신의 아이 니나를 찾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보다도 곁에서 아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니나는 괜찮은 걸까.

 

 왜 아만다는 가만히 누워서 시골 마을의 소년 다비드에게 귀를 내어주고만 있는 것일까. 왜 다비드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과거를 회상해가는 걸까. 내내 석연치 않았던 것들이 끝없는 상상을 만들어내었다. 조곤조곤하게 평화로운 일상이 되짚어지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뭔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것들이 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미처 그를 깨닫지 못한 아만다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한 타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외쳐도 이미 그들의 시간은 흘러가 버린 뒤다.

 

 

 

 

 

 

 

 책을 덮고도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카를라를 괴롭힌 것들은 단순히 미신에 불과했을까. 아니 그녀는 무엇을 알고 어디까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건가. 초록색 집의 알 수 없는 여인과 그녀를 만난 뒤로부터 모든 것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다. 카를라를 원망한들, 행동하지 않았다 해도 아만다와 니나에게 불행이 다다르지 않았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냉철하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백지상태가 되어 추리를 계속한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정의할 수 있는 실체가 몇 가지 놓여있기에 그것으로부터 현실을 생각해본다. 축축하게 젖어있던 잔디, 물에서 냄새가 난다고 주의한 카를라, 호수의 물을 마시고 죽어간 동물과 가축들. 자연스럽게 몇 개의 영화들이 연상되기 시작한다. <다크 워터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그것이다.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소재들이 있다. 작물에서 발견되는 이상, 가축의 심상치 않은 모습, 기형인 아이, 중독된 사람들.

 

 기민한 사람이 제기한 문제들은 쓸데없는 기우로 치부된다. 정작 귀를 기울여야 할 순간에서 사람들은 주목해야 할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사람도, 그를 바라보는 사람도,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도 전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들을 멀리서 가볍게 넘기고 만다. 골치가 아프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일 같아 보이니까.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걱정은 부풀어올랐던 거품처럼 쉽게 사그라든다.

 

 

 

 

 

 

 

 무시무시했던가. 소름이 끼쳤었나. 이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 머물고 사라진 사건에 눈길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서 벗어나버리고 말 테니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벌레. 병이 시작된 순간.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제지 없이 방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다. 언젠가부터 다비드의 아버지에겐 말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머지않은 순간에 그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나아가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했던 이 시골 자체에 생명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모든 이야기가 우리를 자극해오지만 급박함을 자아내던 경고들이 이내 곧 부서져 흩어진다.

 

 여전히 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다. 답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책은 우리에게 결코 수수께끼를 남기지 않았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반복해서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겐 사회적 이슈에 운동가들이 하는 말이 진부하고 뻔한 주장이라고 피해버릴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그 문제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가슴이 답답해져 올 만큼 걱정을 해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단지 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흘러넘친다면, 그것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로운 어떤 의식이 생겨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어떤 의심이 든다면 우선 책을 들어보자. 첫 페이지를 넘긴 이상 결코 책을 놓을 수 없을 테니.

그 순간 우리의 앞엔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이 훌쩍 다가와 있으리라.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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