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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다행한 - 천양희

by 민시원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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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지독히 다행한(2021). Changbi Publishers

 


 

 

 

 

「지독히 다행한」은 천양희 시인이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반복해온 기록이자 하루하루 일상을 빼곡히 채워놓은 증거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시인의 이야기가 마치 숨을 쉬듯 당연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이처럼 계속해서 일상을 고민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살아있는 새로운 것을 위해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시를 쓴다는 태도는 시집을 집어 든 독자의 마음도 일렁이게 만들었다. 책을 버리게 되는 것이 아까워 밑줄 하나 긋지 못하고 작게 붙여본 표지들이 더덕더덕 점철될 만큼.

 

항상 기대하고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어느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되풀이하게 되는 건 축복이면서도 슬픔인가 보다. 만개한 꽃은 언젠간 분명 떨어지고 보고 싶어 죽겠는 절절한 마음에도 죽는 사람은 없다. 삶은 멈추지 않는 모순의 반복 속에 계속되고 있었다. 쉽게 망각하고 쉽게 놓쳐버리기에 오늘도 되풀이를 반복한다. 그리고 시인은 어제의 되풀이가 된 오늘을 되돌어보고자 했다. 그 움직임을 보며 나는 쉽게 잊어버렸음에 감사하고 기꺼이 되풀이를 맞이하고 말았다.

 

 

 

 

 

 

 

 쉬운 언어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을 가진 시인이다.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고 참으로 평범하고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것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곁에서 조용히 짚어주는 시들이었다. 힘을 들여서 읽어내고 책장을 덮은 뒤 진이 빠지는 그런 느낌은 아니다. 결코 강요하지 않는 시인의 목소리는 괜찮다고 다독이며 스스로 일상을 되짚어보게 만들곤 했다. 노원과 마들은 시인의 터전이자 중요한 시상의 시작이다. 내가 지금 위치한 여기 이곳을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나. 여태껏 걸어온 나의 걸음, 나의 길은 어떠했기에 나는 답을 하지 못할까.

 

 이따금씩 등장하는 순수한 시선과 상상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단 하나의 나의 삶에 너무도 집중하여 초점을 맞춘 탓에, 좁아진 시야에 뜨끔하고 마는 장면들이었다. 풀어지고 펼쳐진 시인의 마음은 두루두루 세상을 살피고 조명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물에서 전기가 생산될 것이라는 말에 감탄하고 간절한 것에 끝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담긴 결연한 모습에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나이도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일상의 매 순간을 기적처럼 여기며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하게 느껴지는 그 걸음을 앞에 숨을 죽이며 흐릿해 보이는 내가 남긴 자국들을 떠올려보았다. 나의 수고로운 생활도 살고 있음에 지독히 다행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가만히 바라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움켜쥘 수 없는 모래처럼 젊음이 제멋대로 지나가버리고 있는데 나는 언제쯤 내 걸음을 되돌아갈 용기를 얻고 찬란한 순간을 인지할 수 있게 될까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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