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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 이동호

by 민시원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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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2021). Changbi Publishers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세마리 돼지를 키우고, 잡아먹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조금은 당황스러웠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돼지를 직접 키웠다고 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채식주의자인 작가가 돼지를 키우고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는 말부터 풍겨왔던 강렬한 첫인상이 잊히지 않는다. 나와는 극명하게 정반대에 있는 시선이 곧바로 다가왔달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말 그대로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가졌던 채식주의자 작가가 돼지를 세 마리 키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생각들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도시 생활을 하던 작가가 귀촌을 하고 주변 친구들과 '대안축산연구회'를 맺어 활동하기까지 그가 겪은 생생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뭐니 뭐니 해도 책의 주인공은 돼지들이라고 볼 수 있다. 돼지를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로 기다림에 응답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행동에 나섰던 그의 모습은 책의 말미까지 변함이 없었다. 이른바 '대안축산연구회' 친구들과 주민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결국 세 마리의 돼지의 곁에 남아 그들을 키우고, 관찰하고, 기록한 것은 이동호 작가 혼자의 몫이었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달리 백일이 된 돼지는 일찍이 작고 귀여운 모습을 벗어던진 뒤였다. 돼지를 만나 당혹스러웠던 첫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고스란히 느껴졌고, 함께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빠르게 끝에 다가가고 있음에도 이 책 속의 세 돼지와는 친해지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동물들은 우리의 삶을 함께 하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축산을 위한 가축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대도시에 산다고 할 순 없지만 시골을 경험한 적 없고 그렇기에 축산 동물을 직접 마주하는 일은 더더욱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채소와 과일, 고기를 가리지 않고 식단을 채워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좋다고 찍어온 음식 사진의 대부분에 고기 사진이 들어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뻣뻣한 반응을 종종 보이곤 한다. 그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그들의 신념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다만 가리지 않고 음식을 소비하는 나의 행동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혐오감을 주지 않을지 하는 고민이 가득 차 머뭇거리게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지향해야 한다는 어느 이상향을 향해 가지 못하고 있다는 미묘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정작 저자는 채식을 강요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말이다.

 

 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은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돼지를 키우는 세세한 과정들까지도 사실 그렇다. 당장 요리를 마주하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섭취하다가 그가 오기까지의 과정이 줄 공포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잔혹한 돼지 도축 장면이 담겨 있다는 영화 <옥자>를 보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것에 있다고 변명을 하고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세상의 모든 비 채식주의자들에게 죄책감과 충격을 안겨주게 하고 상념에 빠지게 하는 의도를 가진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단 한 가지 고민을 넘겨받을 뿐이다. '더 적게 먹고 더 비싼 가격을 받아들이기'. 지금까지의 우리의 식탁에는 너무도 많은 비중의 육류 요리가 오르내렸고 소비자는 값싼 고기를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흐리게 보는 것을 멈춰야 한다. 우리에게는 절제와 수용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동호 작가는 자신의 채식이 마을을 위한 것이라 말했다. 대규모 축산업이 자리를 잡은 농촌에서 축산업으로 인해 분열되는 마을을 지키고 싶었던 목적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가 채식주의자이면서도 돼지를 기르고, 직접 도축하여 먹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충격적인가?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고기 요리를 즐기는 이 순간을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직접 돼지를 길러보고 자신의 손으로 도축을 해야만이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저 축산 동물이 겪어야 하는 삶과 비정상적인 생산구조가 인간에게마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겨우겨우 끌어오고 있는 지금의 축산업은 뒤틀린 구조를 견디지 못하고 언젠가는 와해되고 말 것이다. 조금만 더 감사히, 조금만 더 적게, 조금만 더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순간 진정한 공존이 시작되지 않을까.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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