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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매일연재 | 정재민 - 범죄사회

by 민시원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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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cott Rodgerson on Unsplash

 

 

 나는 오래전부터 참 겁이 많았다. 가끔은 얽매이는 것과 속박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법도 두려웠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동시에 언젠가 통제되고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살면서 겪어보기 어려운 일들이라는 것에서 오는 낯섦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늘 끊이지 않았다. 법과 가까운 판검사, 변호사, 경찰, 교수의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를 보고 범죄 사건을 다룬 뉴스와 TV 프로그램을 지나치지 못하고 살펴보곤 했다.

 

 범죄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늘 자극적이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거나 악랄하거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가득했고 늘 그런 소식들이 보도의 1면에 가득 차곤 했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일수록 폭력에 대한 사회인식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이론이 생각이 난다. 자주 이를 살피는 손길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꼭 그렇게 호기심을 못 이겨 기웃거리고 만다.

 

 지난 번에 읽은 매일연재 「테이블 위의 낱말들」이 따뜻한 감성으로 일주일의 마무리를 장식했다면 이번에 읽은 「범죄사회」는 일주일의 시작에 앞서 냉혹하게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월요일 작품이었다.

 

 

 

Photo by Jason Rojas on Unsplash

 

 

 동물학대에 대한 작가의 고백은 충격이었다. 물론 놀라기는 했지만 그 일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다. 전직 판사이자 작가인 그가 자신의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범죄사건을 보고 듣는다.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타인의 입, TV, 스마트폰 등 나에게서는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덕분에 범죄라고 하는 것은 '생활'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먼 거리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에 아주 근처에 범죄는 늘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그중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주체가 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가장 흔한 범죄가 동물학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의 위험한 장난은 언제든 이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모래사장 위를 분주히 다니는 개미들을 징그러워하면서도 가지고 놀고 장난감들을 위협적으로 사용하고. 아이들의 무서운 행위는 아슬아슬한 선을 타는 것 같았다.

 

 사회인식이 변하면서 이것에 대한 감수성도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동물이 소중한 존재이며 괴롭힘을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솔선수범하며 보여준다. 더이상 폭력적으로 동물을 대하는 것이 금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된 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법적으로는 그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를 읽고서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러하듯 속히 전개되지 않는 법의 더딘 변화에 대해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래로 동물이 인간의 삶에 있어 가지는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동물은 가족과 반려가 아닌 '재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이별이 두려워 깊은 관계조차 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너무도 경시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고 그를 처벌할 제대로 된 법안을 이제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느리게 느껴졌다. 너무나 느리지만 그 속에서 변화를 이끄는 인물인 정재민 작가는 우리의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어갈 것이라 말했다. 작가의 글을 읽고 법이 이제껏 담지 못한 사회의 변화를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를 이끄는 이들이, 변화되고 있는 법이,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며 말이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10화 까지 공개된 「범죄 사회」의 에피소드 중에서 꽤나 오래 주제로 다뤄진 것은 '정의'였다.  단순히 언급한 것만으로도 모호함이 한 번에 느껴지는 그런 단어이다. 그리고 '정의'에 대해 가장 가까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판사의 입장에서 듣는 정의 이야기는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뉴스를 보면 나오는 사건의 판결 등을 보면 혀를 차고 분노하는 시청자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고 판사의 결정을 비판하는 댓글이 가득 달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판사의 정의란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분노에 찬 모습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왕 한 사람에게 막강한 권력이 몰려있던 과거와 달리 사람이 사람의 죄의 무게를 재고 그에 합당한 벌을 준다는 것은 오늘의 사회에서는 더이상 쉬운 일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정의라고 하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전설처럼 닿을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판사로서 그가 마주한 여러 케이스들을 통해 우리는 올바른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것을 같게 결정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다르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줄다리기 속에서 정확한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를 생각하다가도 그 정의를 위해 판결의 고민을 계속해왔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안도를 느꼈다. 법리적인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전문집단인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정의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모습이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위험하고 두려운 범죄에 대해 호기심이 멈추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의 바로 곁에 범죄가 있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극을 위한 소재가 아니라 더 나은 삶, 더 살기 좋아질 순간들을 위해 범죄와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주목을 해봐야 할 시간에 걸맞은 책 「범죄사회」였다.

 

정재민 작가가 연재 중인 범죄사회는 스위치 홈페이지에서 출간 전 사전 연재되는 작품이라 무료로 볼 수 있으니 참고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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