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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 똘스또이

by 민시원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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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 이반 일리치의 죽음 (2012).  Changbi Publishers

 


 

 

 

 

그건 이반 일리치의 일이지 자신의 일은 아니다,

자신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p. 19

 

 

 

 

 두려운 게 많은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에 이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게 죽음은 언제쯤 찾아오게 될까. 나는 죽음을 평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고 내가 어렴풋이 멀리 생각하게 되는 이런 시기에 불쑥 찾아오는 위협은 나를 더욱 그러한 공포로 몰아가곤 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은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짧은 분량의 글이지만 이 곳엔 빼곡하게 죽음의 묘사가 담겨있었다. 노쇠하여 얻은 질병에 병원의 치료를 통해 경감된 고통과 살아가다 안식에 드는 그런 죽음은 아니다. 어느 사건을 계기로 이반 일리치에게는 병색이 깃들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라는 너무 사소해서 너무도 허탈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죽음과의 조우를 가속시키는 것에는 의료기술의 미비도 한몫을 했다. 그 시기를 담아낸 소설이기에 이런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전개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이것이 과거의 그런 전유물,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의료라는 것은 너무도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시스템 하에 놓여있는지라 같은 병에도 가뿐히 털고 일어나는가 하면 손쓸새 없이 끝이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병듦의 이유를 찾는 들 치료할 길이 없어 두고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자꾸 나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나의 잘못된 버릇과 습관 때문에 병을 얻게 될까, 어느 날 갑자기 재해와 같은 사고가 찾아올까, 무서운 범죄의 대상이 될까, 조용히 나의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숨이 멎어질까. 고민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늘 그런 생각을 품고 산다. 그러나 그를 억누르는 더 큰 생각이 또 치솟는다. YOLO라느니, 하나뿐인 삶이라느니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즐기기만 하고 살다 보면 늙어서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런데, 모르겠다. 현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나의 즐거움에 신경 쓰다 늙게 되면 착실하게 살지 못한 자신을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즐기고 나를 생각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안타까워할 것인가.

 

도대체, 후회 없는 삶이 있을 수 있는 건가?

 

 

 

 

 

 

 

 홀로 사는 삶을 지향하는 요즘이라지만 쉽게 이렇다 할 선택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또 여기에 있다. 나의 살아갈 날은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내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려 한다지만, 그에 따라 내 곁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없게 된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완연한 나의 곁에서 눈물을 흘려줄 이가 없다면이라는 상상만 해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또다시 관계를 재어보곤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 내 행동의 이런 얄팍함에 또 의구심이 든다. 경중을 재고 따지는 나만큼 그대도 그럴 것이고, 또 내 곁에 남을 이가 업을 거라는 불안에 휩싸인다. 아무리 손을 뻗고 얽어댄다고 한들 이것이 이반 일리치의 사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네트워크고 나발이고 죄다 가늘디 가늘어 작은 손짓에도 끊어져 버릴 연약한 관계일 뿐인데.

 

 

 

 

 

 

 

자신을 위한 진심을 내비치는 게라심과 아들 덕분에 고통이 덜어지고 만족하게 되는 이반 일리치의 모습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저 나의 눈에는 삶의 끝단에 도달한 이가 만들어낸 자기만족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럴 것 같아 조금 슬프고 우울해졌다. 참 좋은 말이 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한 가지 확신에 가득 차 있다. 내가 지나온 날들만큼 화, 행복, 즐거움, 질투, 유희, 괴로움이 범벅된 날들을 똑같이 사나 정말 나의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가겠다 마음을 먹고 변화하나 언제나 삶의 끝에서 후회와 번뇌를 지워낼 수는 없을 거라고.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울어줄 단 한 명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더하기 위해 억지로 끌어가는 관계들에 지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었다고. 지나온 관계들과 상황들에 감긴 나의 삶은 행복했었다고.

 

이 짧은 세뇌가 거짓이었음을 술수였음을 죽음 직전에 깨닫는 들 어쩌겠는가. 그 찰나의 순간이 깨어져버린 환상에 괴로움에 가득 찬 것이든, 진심으로 지나온 삶에 대한 만족과 아쉬움의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이든 지금은 더는 고민하고 싶지 않다. 현재의 이 생각들은 헛된 것은 아니겠으나 짧은 이들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도록 그만하려 한다. 때때로 또 이런 고민들이 나를 찾아오겠지만 늘 끝은 스스로 다독이고 금방 털어낼 수 있기를. 이를 고민하는 지금의 모습 자체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자세의 증명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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