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 최정동

by 민시원 2020. 8. 25.
반응형

 

 

 

최정동: 베토벤이 아디어도 괜찮아(2020). 한길사

 


 

 

 

 

 어둠이 걷히고 발레단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타이즈를 입고 바닥에 드러누워있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간헐적인 동작이 선보인다. 원색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이들을 표현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태초의 것이, 날것 그대로라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두 손과 발로 땅을 짚은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원시적인 동물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괴한 모습에 질리다가도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지금도 어려운 이 발레 음악은 백여 년 전에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선율을 기대했을 관객들이 얼굴에 순식간에 경악이 들어차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줄줄이 곡에 대한 설명을 듣고 봤음에도 질릴 정도였는데 생판 처음 보는 난데없는 도전을 맞닥뜨렸을 테니 말이다.

 

 이 곡이 조화와 완성을 위해 활용되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미치광이의 것 같은 음악은 반세기가 지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삽입되었고, 저자 최정동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음악은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그를 받아들이는 마음에 균열이 생겼을 뿐이다.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는 그런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이해 못할 음악들이 어떻게 세월을 타고 달라져왔는지를 가벼이 설명한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즐겨진 것에서부터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연주까지 스펙트럼에는 가림이 없다.

 

 티브이에서 방영되는 관찰 예능을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차 한잔을 마실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씻을 때도 늘 빠지지 않고 제 일을 하는 목과 귀가 있다. 좋아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여 귀에 담는다. 고도로 발달된 기관들을 가진 행운 덕에 인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즐길 수 있는 특혜를 선물 받았다. 그것이 어떠한 분야의 것인지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주로 등장하는 주역들이 팝, 가요일 뿐. 수천의 LP를 앞에 두고 그날의 한 곡을 골라내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여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하는 것들을 앞둔 고민은 행복한 것이니. LP를 뒤적이는 작가의 모습은 음악 차트를 훑어내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가수뿐만이 아니라 그 권역이 넓어져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자신의 손길을 따라 연주를 한다. 명곡이라 일컫는 곡이라 해도 나만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곡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내겐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클래식 중에서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그러한 곡이다. 처음 들은 곡의 흐름이 꼭 들어맞았고 눈 앞에 악보가 넘실거리는 듯했다. 슬픈 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리듬이 있었고 곧 절정에 다다르다 숨을 죽이고, 여리지만 분명한 소리를 내는 음이 심장을 쥐고 뒤흔들었다. 한 번 반한 것에 대한 집착은 쉽게 놓이질 않는 것이라 혹여나 음을 잊어먹을까 싶어 시간이 날 때마다 되새김질했다.

 

 기억이 닳아버릴까 소중히 아끼던 곡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은 엄청난 것이었다. 유튜브를 내리다 정확히 들어맞는 곡을 찾았을 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곤 했다. 아직도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것인지 찾지 못했고 해당 영상이 내려가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강도로 연주되는 곡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이 경험은 내게 작곡가 '라벨'을 선물해주었다.

 

 실력이나 명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온전한 나의 판단과 취향이 들어갔다는 점만이 의미를 가졌다. [버찌가 익어갈 때]는 샹송이지만 일본의 가수가 부른 <붉은 돼지>의 OST가 가장 좋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첫 정이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말이지 않은가. 다른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처음 만났고,  만난 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리는 첫사랑인 것이다. 불가항력으로 이끌려버리는 운명 같은 뮤즈와의 만남이다.

 

 

 

 

 

 

 

 치욕스러운 것이라 하여 극렬한 혐오를 갖지 않았음에,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바흐의 선율을 무시하고 지나치지 않았음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딱 나의 또래부터 활발했던 참 좋은 변화를 겪고 있던 터라 선생에 의해 기가 죽여지는 안타까운 경험을 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 수업들이 참 싫은 아이들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 싫어했던 과목은 있었을 테니.

 

 나의 경우엔 그것이 체육이었다. 오히려 음악과 미술은 기꺼이 참여하고 즐기는 것에 속했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쉽게 진행하는 동작이 엄청나게 골치 아픈 수식처럼 보였던 나처럼 다른 몇몇의 친구들에겐 음악이 그러했겠지 싶다. 몇 가지 코드를 알려주고 대뜸 오선지에 작곡을 해보라는 엄청난 추진력의 수업에 눈살을 찌푸리는 걸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가진 것들로 어떻게든 도움을 줘보고자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아등바등해봤더랬다.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음악이 그들에게는 제2외국어와 마찬가지였겠지만. 이렇듯 같은 장소에서 공포와 흥미를 느꼈던 저자와 나는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정반대의 부류였다.

 

 그러나 얄팍한 지식과 배움이 독이 되었을까. 나는 딱 그 정도의 음악을 즐겼고 딱 그 정도의 음악에 머무르게 되었다. 되려 끔찍했던 것에 한순간 깊이 빠져버린 그가 더 크고 원대한 것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작고 가벼운 만족이 아닌 그동안 놓쳐왔던 것만큼 커진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언제나 음악을 곁에 두었지만 그만큼 익숙해지고 소홀해져 왔다. 어쩌면 일생에 찾아올 뮤즈가 이미 다가왔음에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여 떠나보낸 것일 수도 있어 헛헛하다.

 

 사랑의 정도와 크기를 정해주는 법은 없다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미처 마음을 쓰지 못했다는 것은 비단 사람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만은 아닐 테다. 너무도 아끼고 아껴 애증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지겨워져 등을 돌리기도 한다. 내게 이 수많은 연주곡들이, 클래식이 다시 마음을 받아줘 꿈결 같은 뮤즈를 보내줄 날이 찾아올까. 

 

 

 

 

 

 

 

 어느 때보다 개성적인 학생들임이 느껴진다는 우리에게 왜 다양한 음악의 개성은 느껴보지 않는 것이냐 안타까워하시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더 이상 빠르고 강렬한 것에만 빠져있지 않고 조금 느리고, 긴 호흡의 클래식에 눈길을 주게 된다는 건 짧은 몇 년의 시간 동안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겠지.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등 언제나 반복하는 하루의 루틴에 한 가지가 더해졌다. 자기 전 유튜브를 보며 입맛에 맞는 곡을 찾아내는 일이다. 작가도 나도 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났을 뿐 너무 다른 세대와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터라 골라내기가 쉽진 않다. 도입만 듣고 꺼버리길 반복하더라도 어느 순간 마치 나를 위한 노래인 듯한 곡과 그를 최상의 상태로 표현하는 연주자의 조화가 마음을 마구 두드린다.

 

 

친절하게도 본인이 아끼는 곡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찾아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글마다 달려있다.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그의 모습에 한껏 젖어든 탓일까. 같은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그의 새 친구 턴테이블 위에서 열심히 돌아가며 소리를 낼 LP의 사운드를 들어보고 싶어 졌다. 슬픈 날에 더 슬퍼지고 싶어 그런 곡을 고르고 외로운 날에 더 쓸쓸해지고 싶어 곡을 고른다. 하루가 정리되는 시간에 누워 곡을 고르기 위해 그날을 되새기고 기분을 살피는 건 가장 좋은 리프레시이자 정신적 충족이 되었다. 가장 개인적인 시간에 가장 솔직한 나를 만나게 만드는 클래식의 강한 힘을 절절히 느끼는 밤이다.

 

 

 

 

 

혁명 또는 사랑, 샹송 [버찌가 익어갈 때] 中
그러나 나는 일본 가수 가토 도키코가 부른 <붉은 돼지> OST가 젤 좋다. 첫정이기 때문이다.

 

새벽 잠자리의 그녀 목소리, 슈베르트 [바위 위의 목동] 中
서른한 살 청년이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걸 바라보며 지은 노래인 것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새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슈베르트에서 애국가로, 음악 교과서의 변신
결국, 세상의 모든 음악교실에선 다른 음악세상이 펼쳐진다. 교과서와 상관없이.

 

사랑하면 온유해지나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무례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내는 흔적도 없다. 사랑은 괴팍한 사내를 이토록 온유하게 만들었다.

 

같은 피아노, 다른 소리, 글렌 굴드의 피아노
추사의 붓도 추사가 써야 추사체를 쓰는 법이다.
글렌 굴드의 피아노는 에번스의 손에서 스타인웨이 특유의 풍성하고 화려한 소리를 내는 CD318로 돌아갔다.

 

로마 황제의 무덤, 비극의 무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로마 황제들의 무덤이었고 한때 로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성은
비극의 주인공이 투신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