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라진 마음들 - 김성경

by 민시원 2020. 9. 21.
반응형

 

 

 

김성경: 갈라진 마음들(2020). Changbi Publishers

 


* 창비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으레 있는 행사로 여겼던 날이 있다. 국가 보훈의 날을 맞아 열심히 포스터를 그렸던 날. 학교에서는 꼭 1년에 한 번씩 통일을 주제로 한 포스터˙표어 대회를 열었고 나는 열과 성을 다해서 참여했더랬다. 모든 열심히 잘하는, 옳은 말을 하고 선생님들이 원하는 답만을 잘 골라서 말하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날들에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 같다. 교내 백일장에 글을 쓰고 물감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늘 그렇게 해온 기억들이 가득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그렸던가. 어느 먼 옛날 할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현충원의 모습과 하나 될 우리 대한민국과 북쪽의 모습을 조화롭게 그려냈었겠지. 아이들은 그게 답인 줄 모두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통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주제로도 글을 쓰는 게 허용되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좋은 글로 평가받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걸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 영상물을 시청하고 만들어내는 작품들 속에는 반복된 행위 속에 늘어난 잔기술만 있었을 뿐. 진심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힘겹게 사는 북쪽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머리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채 자리 잡은 생각이었기 때문일까. 되려 나는 조금씩 더 통일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그게 맞는 것이다라는 가이드라인이 떨어져 나갔고,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자료들로부터 멀어진 게 시작이었다. 평소에도 깊이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찰나에 눈에 들어오는 거는 거칠게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북한의 모습뿐이었다.

 

 굳이 내가 북한의 일상과 통일에 관심을 두고 주목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만 그런 자세한 이해와 관심이 없던 찰나에 우리에게 보이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단편적인 모습들 때문이기에 역으로 생각이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지 못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채려는 노력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 분단을 살고 있는 우리에겐 이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최선의 삶의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당장의 눈앞에서 전쟁이 재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매번 불안해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 지금과 같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분단을 이해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종의 부채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기로는 평화통일이 중요한 거라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기 일쑤였다. 정말 가끔, 탈북민을 만나는 강연 시간이 생겼을 때 그들 역시 어려운 북한의 현실을 말하며 선전매체들과 다른 인민의 삶을 우리에게 많이 들려주었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이야기 같았다. 멀리 떨어져서 겪은 적 없고 본 적 없지만 우리는 한 국가의 같은 사람들이기에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게.

 

 김성경 작가는 우리가 무관심과 무감각을 체화했다고 했다. 그래 그건 사실일지 모른다. 내가 점차 가지게 된 생각은 '굳이 우리에게 통일이 필요할까'였으니까. 지금은 너무도 완벽하고 너무도 조용한 평화로운 일상이다. 코로나 19라는 대내외적인 위협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시기가 맞물려 바쁘기야 바쁜 나날들이지만, 당장의 커다란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면, 통일을 생각했을 때는 알 수 없는 불안이 느껴지곤 한다.

 

 조금 나은 대한민국이 지금의 우리의 것을 나눠야 하고 전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한 곳에 만나게 될 수 있다는 모든 것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오히려 통일이라는 관문이 일상을 깨뜨릴 것만 같고 흔들어놓을 것 같은 불안함이 가득 밀려오는 것이다. 원하고 바란 적은 없지만 세대를 거쳐 물려 내려온 업을 지게 된 기분이다. 지금의 세대에게 통일이란, 등 떠밀려 해결을 종용받고 있는 과제이다.

 

 

 

 

 

 

 

 다시금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해볼 시간을 마련하게 다독이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사회 심리학이 가득하다. 이 끝 모를 안정감과 점차 높아져가는 분단의 감정이 실은 차곡차곡 쌓여온 의도에 의한 것이었음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쉽게 이렇게 저렇게 해답을 내놓지도 않는다. 부제목에 충실한 마음 조각들에 집중하기만 한다. 여전히 우리에겐 눈앞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우선이다. 나 역시 끝맺음이 되어서야  '북조선'이라는 명칭이 조금 익숙해졌는데 덮자니 또다시 먼 나라의 이야기만 같다. 당장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는 이들과 조금은 제쳐두고 싶은 우리와의 간극은 아직도 너무 멀어 보인다.

 

 짐이 아닌 일상으로 분단의 시간을 추억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