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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by 민시원 2020.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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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06). 한길사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보곤 한다.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어 묘하게 어긋나는 게 보이는 그런 사람. 이런 이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슴이 답답해져 올뿐. 아이히만은 그런 사람이었다. 딱히 나쁘다고 욕을 할만한 거리는 없다. 단지 고집 센 이 사람들을 대하기가 조금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묘한 부류의 사람을 법정에서, 그것도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범죄의 원인으로 마주하게 되면 어떨까. 재판정이 받은 커다란 과제는 이 무지한 인간을 우리의 도덕적 양심을 향해 계몽시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시행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따라 그의 삶과, 재판 과정을 엮어낸 책이다. 그 속에서 독자는 한나 아렌트의 시선을 따라 재판의 시작을, 아돌프 아이히만의 삶을, 재판의 말미와 처형을 목격한다. 한나 아렌트가 책의 내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결하다. 1. 아돌프 아이히만은 평범한 우리 곁의 인간일 뿐이며 2. 사유하지 않은 무지함이 그의 가장 큰 죄를 만들었고 3. 그의 곁에서 미처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는 점. 확고한 짧은 메시지들을 다짐한 책이지만 그녀의 서술은 독자의 사유를 어렵게 한다. 유대인 범죄를 저지를 아돌프 아이히만을 제대로 벼려내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은 너무도 많았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시위에 시달렸다고 할 정도면 말 다했지 않은가. 그만큼 한나 아렌트가 던질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묵직했다. 범죄자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그를 향해야 할 화살표가 멈추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이 죄를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분석해야 했고 잘잘못의 원인을 파악해야만 했다.

 

 

 

 

 

 

 

"이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끔직했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사디스트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지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가?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마구 총을 갈겨댔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우리들은 미치거나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우리 민족이 말이지요라고 말이죠."

p. 154

 

 

 

 아이히만이 특별한 어떤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불쑥불쑥 찾아온다. 이를테면 잔인한 것을 보며 잔인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너무나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들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다. 심약한 이 사람은 여전히,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유대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를 알고 있던 때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에 그는 떳떳했다. 자신이 한 것은 안타까운 이들을 향한 최대한의 대처이자 최선의 선택일 뿐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이 기만이나 자기 암시가 아닌데 어찌할 수 있을까. 개인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끝내 행복한 결말은 다가오지 않았다. 재판은 끝이 났고 이미 사라져 없어진 인물이지만 현재까지도 우리가 마음에 얽매이는 불편한 기색을 해결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거세게 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은 상관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거슬릴 것이 없었고 그대로 상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였다. 덕분에 아이히만은 두 가지 반론 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자신은 수동적인 하급 지휘관에 불과했고, 가끔씩 있었던 명령의 불복종이 유대인을 위한 자신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재판의 과정은 줄다리기를 하는 치열한 머릿싸움의 현장이 아니었다. 그저 두 가지 신념과 정의가 대립하여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선 두 그룹만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히만에 경악하는 다수의 무리에 속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킹스맨>의 발렌타인이 떠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처형될 사람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없었고 총살당하는 모습을 보자 무릎이 떨려왔다고 했다. 우습지 않은가. 자신의 판단 하나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그들을 해결하려고 했고 불필요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빠르게 가스로 처리할 생각을 한 그는 그제야 현실을 마주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고 괴로워하며 미쳐버리느니 눈을 감고 지시를 내리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여태까지 자신을 속여왔노라, 내가 살 길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고 진심으로 말을 내뱉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그의 입장을 더욱더 생각해보려는 노력을 기쁘게 할 수 있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이히만도 변하지 않았다. 참회하고, 뉘우치고, 속죄하는 '빌런'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을 바라보는 내내 아이히만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함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위험한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가 마지막으로 써 내린 후기에서 내가 느낀 이 불편한 마음이 난데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들 중에 하나 아이히만과 나치 정부에 가리어져, 사유하기엔 위험의 요소가 많아 꺼려질 수밖에 없었던 '주변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문제의 주체로는 나치 정부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이 호명되어야 한다. 민족적인 환경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역시 이들을 우리와 비교하여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만 명의,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무참히 죽어가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조금 더 쉬운 노동으로 빠졌고 홀연히 망명길에 나설 수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고위층의 유대인이라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끔찍한 현장에서 빼내 온 협상가들, 또 다른 유대인 고위층 지도자들은 반역자인 것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괴로운 유대인 민족의 삶을 그린 「안네의 일기」 같은 책이 아니었기에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던 유대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명목 하에 줄기차게 진행되어 왔던 유대인 지도자들과 나치 정부의 기묘한 관계를 찜찜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입에 아무리 침을 바르고 얘기한들 그들이 진정 유대민족을 위해 그리 했다고는 말할 수 있을까.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과연 아이히만인가 그 주변인들인가.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p. 391

 

 

 

위험이 닥쳤을 때 인간은 존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정말 그대로 가치 있는 인간인지를 재어질 뿐이다. 이는 슬프게도 그 어느 때보다 전시상황에서 산업과 경제 가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부흥의 순간과 동시에 일어난다. 우리가 웃어넘겨온 학연, 지연, 혈연 그 끈끈한 관계들이 생존을 좌우하는 하나의 키가 됐다.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던 것은 히틀러가 끔찍이도 유대인을 경멸한 인간이라 어떠한 유대인도 살려두지 않을 무시무시한 속셈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넘겨짚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유대인은 '일 등급 유대인'과 '돼지'들로 나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일 등급 유대인을 나치 정부는 흔쾌히 묵인할 거란 것을. 단순한 지도자의 실패인 것인가. 결국엔 살고 싶었던, 사랑하는 나의 이들을 지키고 싶었던 작은 이기심이 대의로 감싸져 사람을 돼지로 만들어버렸다.

 

어느 때보다 글을 씀에 있어 너무도 많이 머뭇거렸고 말을 고르기 위하여 며칠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이제 노트북을 덮고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주요 보직의,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리라'? '내 생에 찾아올지 모르는 그 어떤 두려움에 순간에도 나는 내 확고한 신념을 따르리라'? 적어도 나는 아이히만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히만과 같은 부류로 내쳐지고 싶지 않다. 나의 사유가 반드시 보편의 정의를 따라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기적인 나의 작은 소망들이 똘똘 뭉쳐 가장 못되고 끔찍한 악의 종결점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다. 사유하지 않음에서 오는 악. 생각만으로도 죄스럽지만 악함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 최소한 나의 잘못을 알고 스스로 자책하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되었다.

 

 

 

 

 

 

※ 몇 가지 구절

 

제게 지금 크게 상처난 곳을 보여준다면 저는 그것을 똑바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저는 의사가 될 수 없을거라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p. 152

 

마치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들의 사지는 아주 유연했습니다. 그들은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고, 한 민간인이 치과용 집게를 가지고 이빨을 뽑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p.153

 

아이히만은 이러한 추잡한 일(Shweinerei)을 들었을 때 분노했다.
... 왜냐하면 이러한 거래는 통상의 나치스 정책의 아주 관대한 태도와는 모순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p.217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p.391

 

학살센터에서 실질적인 살인 작업이 유대인 부대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잘 알려진 사실은 검찰의 증인들에 의해 공정하고도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p. 194

 

"...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를 심판할 자가 누구인가?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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