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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레이첼 커스크

by 민시원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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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커스크: 윤곽(2020). 한길사

 


 

 

 

 

 내가 생각하기에, '완벽한'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전에 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했던 말 같은데 '사랑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은 없을까'라는 생각. 이제야 조금 몸뚱이가 아닌 머리가 자라고 있는 나는 사랑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를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가슴으로 진정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냉철한 소시오패스 셜록 홈즈의 드라마에 사랑이 소재로 등장했을 때, 냉철한 음악가 베토벤에게도 사랑은 존재했다고 들었을 때, 실망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굳이 경계하고 들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내게 보이는 느낌은 이러한 것이었기에 사랑을 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어떤 관계가 깊어진 순간, 그리고 그게 깨어진 순간 사람은 떨어뜨려진 도자기처럼 산산이 조각이 나는 것 같았으니까. 「윤곽」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조금씩 천천히 조각들을 주워 들어 붙여나가고 있는, 조각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으로 얽매인 관계라는 것은 꼭 성애의 의미를 담는 것은 아니다. 그건 연인 사이의 것이든, 부모 자식 간의 것이든, 형제간의 것이든, 플라토닉이든, 에로스든 상관이 없었다. 그 수많은 정의할 수 없는 모든 사랑의 종류가 사람을 만들고 결정하기에는 문제없는 커다란 것들이었으니. 그 각기 다른 종류의, 슬픈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1. 형제

 

 

 

 

"그러던 어느 날, 그 강이 말라버렸다. 둘이서 공유하던 상상의 세계가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둘 중 한 명이 -- 어느 쪽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그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일에서 한 가지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의 삶에서 아름다웠던 것들은,

엄격히 말하자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상대방과 꿈꾸었던 결과라는 사실 말이다."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말이겠지 싶다. 아직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이전,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둘 만에게는 둘 만의 세계가 있던 시절을 많은 이들이 경험해봤을 테니까. 부모도, 어른도, 또래도 만들어내지 못한 상상의 나래와 환상 속에서 늘 즐겁고 기뻤던 것은 둘 뿐이었다. 그래도 그건 그들의 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신나는 날들의 연속이었겠지. 내게도 형제가 있는터라 나는 이 말에 공감을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멀어지고 사이에 벽과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거라 생각했다. 괴롭고 슬퍼도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까. 우리가 멀어진 그 순간을 인식하는 것 말이다. 무엇이 그리 기쁘고 즐거웠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실없는 것들을 가지고 좋아서 시시덕거리고 있었겠지. 그래도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가진 많은 종류의 사랑 중에서 처음의 몇 안 되는 것들을 나눠가진 우리의 시간을 되돌려보면 그렇다. 언젠가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듯이 싸우고 그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시 어물쩡 돌아와 버리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이이다. 처음 만들어본 세계, 그 우리 만의 세계가 참 즐거웠다는 것만이 기억난다. 그렇다고 또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너무도 절실히, 온 마음과 옴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린 그때처럼 순수한, 세상의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혈연이라는 질긴 인연으로 만나서 떨쳐낼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 것이 우리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또 그것이 우리의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저 그리운 세월로 추억을 하겠지만 지나 보낼 나날들에 새로운 관계와 형제의 새로운 우애를 만들어갈 수 있겠지 하는 믿음이다.  

 

 

 

 

2. 부모와 여성

 

 

 

 

"유일한 희망은 자녀나 남편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거기서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지만,

사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지적했듯이,

그런 여성은 기생충에 불과해요.

남편에게 붙어사는 기생충, 자식에게 붙어사는 기생충." 

 

 

 

 

 어린 시절, 친구들이 다 가버린 유치원에 남아서 선생님들과 함께 엄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컸는지 알 수 없는 놀이방에 앉아 있으며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 조금 더 내가 컸을 때, 기다림의 장소는 피아노 학원으로 바뀌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

 

 나는 엄마를 조금 원망했었다. 친구 집에 갔을 때 반겨주시던 아주머니를 보면서, 왜 우리 엄마는 집에서 나를 반겨주지 않는 걸까. 내가 그렇게 소중하지는 않은 건가 하는 생각들. 이 못된 머릿속을 반성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당연하고, 당연한 것을 내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뒤늦은 사람이었기에.

 

 나를 더 원망에 가득 차게 했었던 것은 엄마의 말이었다. 조금 더 챙겨주지 못했음에 미안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괴이하게 들리고 반감을 불렀던 말이다.

 

 일처리도 끝내주게 하면서 몸 관리는 철저하고,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챙기는 일도 완벽하게 해내는 여자들을 보며 질렸다는 안젤리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제 더욱더 나의 어머니를 이해한다. 집안에 갇혀 무언가의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은 노예와 다름이 없음을 이제 알고 있다. 여성에게만 덧씌워진 가혹한 족쇄다. 철이 없고 이기적이라 할 텐가. 의무와 책임이라는 이름 하에 끔찍한 것들을 강요한 것은 나였으니. 기생충을 만들고자 바득바득 기를 썼던 것 이 모습이야 말로 기생충 자체였지.

 

 사람과 섞여있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아들의 문자와 전화에 일어나야 했던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그것은 그녀에게 떨쳐낼 수 없는 마지막 마음의 잔재였겠지. 다시 사랑을 할 여유를 주지 못한, 짧은 여정에서도 끝내 단호히 끊어내지 못하게 만든 족쇄였다.

 

 

 

 

3. 관계의 표면

 

 

 

 

" 사람들이 본인들이라면 절대 꿈도 꾸지 않을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권하는 것이 재미있었다.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심지어 가장 친절한 사람들,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도 그의 관심사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지 않았다.그들을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속박이 심한 곳, 탈출이란 것이 현실이 아니라 그저가끔씩 꿈꿔보는 그런 것에 불과한 자리에서 그에게 조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가 하고 싶었다. 속내를 진하게 털어놓는 대화. 정말 잔인한 건,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지만,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얕은 것이었을까. 더욱더 친하고 벽이 없고 가깝다 생각했었지만 남는 것은 위선적인 모습들 뿐이었다.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깨어진 인물들의 모습은 이러한 회의감 때문이었겠지.

 

 그저 옆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길거리에서 친구의 친구로 다리 건너 만난 사람일 뿐인데 쉽게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이 그 자체가 좋아 보여 함께 대화가 하고 싶었다. 언젠가 참여했던 독서모임이 좋아 보였고 또 그것을 하고 싶다고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지만 한 번의 말이 흘러나오면 이내 봇물이 터지듯 서로의 이야기가 방 안을 채워간다. 그것을 보며 나는 신기한 기분과 함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낯선 이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끝내 사랑하는 주변의 인물들에 털어놓지 못하여 꽁꽁 숨겨왔던 것이다. 사랑하기에 더 생겨버린 미묘한 거리감이다.

 

 우리는 대나무 숲을 필요로 했던 건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이 쌓여 터질 것만 같아 깊고 깊은 곳에 내뱉을 수 있는 대나무 숲. 어찌나 막혀있었는지, 메아리가 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토해내게 되는 대나무 숲이다. 언젠가 우리가 그 모임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딱 그 정도의 거리다. 친하게 포옹을 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가벼운 웃음과 인사만이 오가는 가벼운 관계.

 

 너무도 마음이 쓸쓸하고 괴로운 날. 길에서 아무리 참아보려 해도 마음에 있는 것들이 출렁거려 쏟아질 것 같은 날. 길 위에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낯선 이들의 위로가 필요해서였을까. 다시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지도 않고 그저 언젠가 다시 만나면 스쳐 지나가겠지만, 그 정도만을 바라게 되는 낯선 관계에서의 표면적인 관계를 말이다.

 

 


 

 

 겉에 남은 것은 껍데기. 윤곽이다. 내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너무도 크고 다양했기에 우리는 깨어진 관계들에 마음을 빼앗겨 윤곽만 남은 인간이 되었다. 생애의 마지막이 찾아오기 전 다시 언젠가는 마음이 차오를 것이다. 내어주는 수많은 류의 사랑이 언젠가는 되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아스라이 멀어져 버린 슬픈 나의 시간이 다시 채워질 것이라고. 과거의 그것들을 되풀이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화는 시간을 초월하고 무게도 없는 것인 반면, 적대감은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을 차지했다. 손에 잡히지 않던 것들이 단단한 실체를 가지게 되었으며, 머릿속에만 있던 것들이 형체를 띠게 되었고, 사적인 것들이 공개되었다.

 

"가끔은 제가 의도한 파국이기도 하니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어차피 끝날 관계라면 가능한 한 빨리 그 결과를 알고 직접 마주하고 싶은 거예요. 저는 모든 것을 곧장 알고 싶어요. 중간에 있는 시간을 거치지 않고 내용만 알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제가 배운 게 있습니다. 무언가를 개선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요. 그렇게 된 데에는 나쁜 사람들뿐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책임도 있는 겁니다. 개선이라는 건 그저 개인적인 환상일 뿐입니다. 그것도 나름대로는 참 외로운 일이죠. 우리 모두 거기에 중독돼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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