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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

by 민시원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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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한용운/이육사/윤동주/이상화: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2019). Media Changbi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낯설게 다가오는 글씨체마저도 고와 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의 시를 읽고 있지만 그 간격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같은 글임에도 이들과 같은 마음을 담지 못하는 나의 글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같은 나라의 같은 곳에서 같은 글을 쓰고 있지만 전혀 다른 깊이를 담아온 글 앞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쉴 새 없이 불었던 거센 풍파에도 고요함을 유지하는 조용한 시구들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다. 크기가 어떠한 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단 한 장의 종이 위에도 피어나는 고결한 마음들이 가득하기만 하다.

 

 어떤 투철한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언제고 항상 같은 나라에 사는 이들로서 역사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었다. 항상 가슴의 어딘가에는 나라가 거쳐온 시간들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금씩 그것이 민족성을 강조하는 시류였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들 때문이었다는 것을 배우며 조금씩 집착에서 멀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잊지 못하는 그 마음을 따라서 결국 민족시인의 시집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단순히 시집을 고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시인들의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나온 복잡한 마음들이 머릿속에 채워지곤 한다. 그러나 이들이 시간이 아까운 쓸모없는 고민이었음을, 정작 책을 펼쳐 들고서야 느낀다.

 

 민족시인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민족에게 뗄 수 없는 의미를 만든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도 쉬이 넘어갈 수 없고 그들이 남긴 글에 담긴 것들을 헤아리게만 된다. 그러나 잠시, 조금만 그를 멈추고 올곧이 시편 자체를 느껴보려 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차고 넘쳐흐르기 때문에.

 

 감히 무엇이라 평을 달아두는 것조차 고결한 시에 누가 될까 하여 말을 고르고 고른다. 어떠한 말로 표현한들 부족할 것이며, 그러는 시간이 아까워 눈에 한 번 더 담아내기에 바빠진다.

 

 

 

 

 

 

 

 우리는 살며 무엇을 마주치고,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충실히 번역해내는 것이 어려워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나라 같은 조국을 가진 우리들은 그 사실만으로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같은 글과 말을 한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 온전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해진다. 나의 입에서, 나의 손에서, 나의 머리에서 끊임없이 글과 말이 생겨나지만 언젠가 나도 이 같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나의 평온한 이 밤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님을, 지금까지 지나온 수많은 시간을 가진 이 땅 위에서 느낀다.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이 아름다움이 나의 어딘가에도 잠겨 있을까. 나도 이네들과 같은 민족이었음을 함께 자부해도 괜찮은 걸까.

 

 책을 펼치고 작은 글의 거대함 앞에 앉아 스스로를 계속 깎아내며 훗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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