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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 미하일 불가꼬프

by 민시원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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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꼬프: 개의 심장(2013). Changbi Publishers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가 없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불안정한 어떤 시기를 다룬 문학들이 늘 그렇듯이 감내를 해야 하는 부분인 걸까 하고 생각을 해보려 하지만 여전히 이건 아니라는 반감이 솟는다. 문제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샤리꼬프처럼 뇌가 이상해졌다 여기고 생각을 잠시 멈추고 보는 게 그나마 정신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교수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모습은 처음부터 어딘가 의심을 갖게 한다. 소위 '돌팔이' 의사처럼 보이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그였을 터. 의사를 찾는 환자들에게 어딘가 아픔과 이상이 있는 것은 당연하나, 이 환자들의 모습은 기이해 보이기만 한다. 어딘가 기쁨에 차고, 흥분된 그런 모습들. 교수 필리뽀비치가 그들에게 건네는 말은 역시 경악하게 만든다. 이들이 하는 수술의 목적이 무엇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 수술을 집도하는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다.

 

 어딘지 불안하다 했다. 누가 본들 안경 너머 눈을 번뜩이는 교수의 모습은 어딘가 뒤틀려 보였으니까. 지나치게 자만했고, 그 자만이 가져올 파란이 클 것임은 분명했다.

 

 

 

 

 

 

 

 비록 개일뿐이지만 이 생명에게는 생애를 지나쳐온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다. 혁명을 꿈꾸고 계급의 불합리를 깨려 하는 인간들의 모습과는 달리 오히려 부르주아 계층의 이들을 따르고 믿으려 하는 것이 이상하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어쩌면 빈곤과 피로감에 젖어있는 프롤레타리아들이 보인 폭력적인 것들에 질려 버린 데다 좋은 잠자리 좋은 먹이를 주는 부르주아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서 가장 기구한 것은 누구인가. 프롤레타리아를 향한 불쾌감을 참지 않았지만 그만큼 가혹한 상황에 놓인 교수인지 번번이 전진에 실패하는 프롤레타리아인지 끔찍한 일을 겪은 떠돌이 개인지. 기이한 일이 가득한 세상을 목격해야 했던 독자들 역시 그 축에 낄 수 있으려나. 처음엔 원치 않은 일을 당할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에 개가 불쌍했고, 결국 일어난 끔찍한 일에 질려하며 다시 그를 측은해했다. 그러나 알량한 마음이었을까.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괴생명체가 되어버린 그가 교수를 "아버지"라 부르짖는 그 순간엔 나 역시 인간의 편에 서서 그를 향해 차오르는 혐오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로테스크한 엽기적 실험과정에 그의 의지는 단 한 톨도 없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냉정을 찾아보자면, 개의 심장이라는 제목을 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심장을 통해 영혼을 뒤바꾸겠다는 어이없는 전개는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만큼 현재에도 미완성적인 지식을 서서히 생기던 시기의 위험함이 물씬 풍겨왔다. 호기심은 발전의 씨앗이 될 수 있지만 통제되지 않는 호기심은 위험을 만든다. 확신에 찬 자신만만한 의사는 그 모습 그대로 거침없는 실험을 시도했고 실험의 끝은 성공이지만 성공이 아니었다. 불안과 역겨움에 떨리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글을 읽으려 해도 자꾸만 상상이 되어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집필을 했음에도 엄격한 검열을 통해 공개될 수 없었다던 말이 이해가 된다면 나쁜 걸까. 풍자적인 비판 소설이기도 하지만 문제작이라는 평가만큼 쉽게 논하기도 어려운 책이다. 인간의 정신이 뇌로부터 온다는 것은 뇌를 바꿈으로써 정신을 이식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간을 젊은 몸을 가지도록 허락하며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인가. '마음'이라고 하는 단어에 가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머리를 지목하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 생물학자도, 작가도, 일반인도 모두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나 등장하는 소재가 되고, 사람들의 이목은 그에 끌리게 된다.

 

 교수의 위험한 상상은 곧 우리의 머릿속으로도 퍼져 우리의 위험한 상상이 된다.

 

 

 

 

 

 

 

 프롤레타리아적 생각을 하는 개-인간의 뇌는 개의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 음식을 먹어치우고 술을 마시며 욕설을 지껄이는 건 인간의 의지인지 개의 의지인지. 어쩌면 이 둘이 만나 만들어진 개-인간의 형체처럼 두 생명이 하나로 융화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일지도.

 

 약간의 소름이 돋기도 하며 무엇을 느낀 것인지 확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기분이다. 한편으론 이 같은 작품을 극에 올리려 했다는 불가꼬프의 계획이 더 놀랍기도 하다. 이 쓸데없는 궁금증이 치솟으면서 개-인간이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또 궁금해지기도 하고. 남겨진 독자가 무엇을 걱정해야 하는지 생각할 것은 많은 듯싶다가도 짧은 소설에 휘몰아친 이야기에 정신이 빠져버린 것 같다. 언제든 무시무시한 개-인간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생물학적 연구의 윤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까. 아니 혹시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개-인간들이 탄생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이런 생각이 음모론적인 의심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더욱 께름칙한 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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