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 정미진

by 민시원 2020. 12. 7.
반응형

 

 

 

정미진: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2020). Media Changbi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여행에 환상이 담길수록 답답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고, 현실이 옥죄어 올수록 환상이 짙어져 갔다. 책에는 여섯 개의 나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섯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다. 여행. 그것도 낯선 사람이 가득하고 알아듣지 못할 말이 흘러나오는 타국으로의 여행은 환상을 담아내기에 참 적절한 그릇이었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다른 목표로 시작한 것이지만 모두들 비슷하게 다르지 않은 환상을 겪었다.

 

 '일종의 자학적인 행위'로까지 비칠 수 있는 것을 여행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자신을 외로움으로 몰아가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외로움에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되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직면하기를 택했다. 물밀듯 밀려오라고. 이들이 외국으로 떠났다고 해서 혼자가 된 것은 아니다. 고립된 오지로 떠난 것이 아니기에 늘 주변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곳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낯선 존재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뼈아프게 마주한 외로움은 더욱 크고 순수한 환희를 만들어낸다. 주변의 이들과 같은 것은 인간이라는 것뿐 쉽게 도움을 청할 수도, 마음을 나누기도 쉽지 않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결국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만다.

 

 

 

 

 

 

 여행을 기껏 시도했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곳의 풍경과 떠나온 '진짜 현실'이 계속해서 교차된다. 다른 여행객들과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정도의 설렘과 흥분, 떨림을 느끼지만 사실 그 속엔 모두 다른 현실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떠나온 현실의 크기를 마주하는 순간 너무도 빠르게 압도되어 그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 털어버리기 위해 다짐을 해서 하늘길을 따라왔지만 결국 떨쳐내지 못하는 것일까.

 

 같은 경험을 나 역시 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의 장소, 시간은 달라도 늘 같았다. 기껏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 출발한 여행이지만 어째서인지 떠나올수록 미뤄둔 현실이 짓누르듯 머릿속을 차지했다. 지금의 순간을 즐기자라고 애써 되뇌며 밀어내 보다가도 불쑥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었다. 바보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현실이 벗어나고 싶어 질 때에는 늘 훌쩍 떠나가버리는 생각을 하다가도 떠나와서는 현실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참 미련해 보일 테니까.

 

 결국 여행에는 끝이 존재한다. 특정할 수 없는 이유로 두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안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할 때, 가장 설렌 순간의 끝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만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고, 삶이고, 현실이니까. 도착한 후에는 묘한 안도를 느낀다. 

 

 

 

 

 

 

 

긴 억압과 잠깐의 해소를 반복한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정처 없이 헤매는 난민이 되는 것일까.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작가 역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다시금 권한다. 이 순간을 잘 버텨내어 언젠가 다시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오면 꼭 여행을 떠나보라고. 아직 내게는 거세게 고독과 마주할 용기가 차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작은 캐리어 하나만을 들고 '탑승을 시작'할 수 있을까. 언제든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이 결국 그런 것이라고, 환상에 몸을 내던지면서. 결국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 속의 조각들의 모음이기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