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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 돈 드릴로

by 민시원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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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드릴로: 침묵(2020). Changbi Publishers

 


*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전 집에 살았을 때 전국적으로 정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모두가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여름날 낮, 사방의 전원이 나가버린 날. 방과 후 집에 있었던 시간에 놀랐던 것이 기억이 난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바라본 바깥은 조용했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도로를 향해 서있는 신호등의 불이 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예쁘게 꾸며놓은 세상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정적이 가득했다. 이제야 생각해보지만 낮이라 다행이었던 게 아닐까. 집에는 꺼져버린 냉장고를 보며 걱정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뻔한 일상에 생긴 변화가 신기하기만 했고 두근거렸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평소에 개수를 헤아려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기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3차 대전에서 어떤 무기로 싸우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4차 대전에서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우게 될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어찌나 같은 것을 그리고 있던지 소름이 돋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단지 신이 나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기대와 설렘을 가질 수 없었다. 단 하나의 스위치가 일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가 이제 더 이상 작지 않음을 알기에, 상상만 해도 아찔하기만 했다. 지금의 시간도 혼란과 변화가 격동하고 있지만 이것과 비교도 안될 정도의 세계적 패닉이 오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첩보영화에서는 사이버 상의, 데이터를 다루는 문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흔히 다루는 것은 해킹 같은 공격을 통해 세계에 혼란을 주고자 하는 위협이었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물리적 공격만이 전부가 아니게 된 것이다. 사실 그보다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통신이 단절되어버린 순간 비행기는 작동을 멈췄고, TV는 켜지지 않았고, 전화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무료한 듯 보이지만 늘 같은 일상을 살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뻗쳐나가는 불안과 기이한 정적에 꿰뚫려야 했다.

 

  2022년의 이들의 모습과 일상이 지금의 우리와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에 덩달아 긴장을 느꼈다. 모든 세상의 것들이 중단된 후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이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를 느껴야 하는 걸까. 돌아가고 싶지만 갈 수 있는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는 머릿속에는 무의미한 것들만이 차올랐다. 애써 기억을 더듬고 배우고 써 내려갔던 기록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지금도 나는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고 휴대폰으로 강의를 듣고 태블릿으로 일정을 정리한다. 나의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는 이 전자기기들이 몸에서 떨어졌을 때 과연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현재에 더욱 커지고 있는 디지털 시장에 대한 분석을 보아도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아무도 쉬이 만날 수 없는 이 상황에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 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뿐인데 이마저도 끊기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전화도 모든 것이 안 되는 와중에 나는 집 밖을 나서고, 한가로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미스트>와 같을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갇힌 기분. 집은 더 이상 아늑한 곳이 되지 않을 것이고 단순히 공간만을 남겨놓은 하나의 철창 같게 느껴질 것이다. 바로 옆에 앉아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될 것이고 아무도 서로를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이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 같지만 그것이 딱 지금의 모습을 바라본 것이라는 게. 어느 때보다 강력한 침묵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게 두렵다. 더 옥죄어 오는 것은 이미 그 불안을 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계속해서 더 빠져들고 말 거라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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