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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에게 - 안경숙

by 민시원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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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숙: 사랑이 나에게(2019). 한길사

 


 

 

 

 

 사실 처음부터 골라두었던 책은 아니었다. 그림을 소개하는 책을 하나 봐 두었는데, 그 책이 안타깝게도 절판이 되어 엉겁결에 고르게 된 것이 「사랑이 나에게」였다. 처음에 마음에 두었던 책은 「현대 미술의 여정」이었다. 딱히 특별한 어떤 얘기를 다뤄서 고른 건 아니었고 사실 무슨 내용을 다루는 책인지도 잘 몰랐다. 다만 그를 골랐던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삽입되어있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림을 보면서 그렇게 큰 감흥을 받는 편이 아니라서 하물며 진짜 작품이 아닌 프린트된 그림을 보며 무언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한 번에 뒤집어지게 된 계기는 「그림의 힘」을 펼치며 시작되었다. 그림의 힘은 출판이 되었을 때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그림 하면 떠오르는 책들 중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펼치면 그림을 통해 미술치료를 한 경험에 따라 썼다는 저자의 설명이 먼저 반겨준다. 그리고 정말 하나하나 삶의 여러 일들에 대하여 간단한 코멘트와 함께 페이지들을 가득 메운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매번 드러나는 그림을 볼 때마다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을 보면서 그저 가볍게 책장을 넘기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작품을 만났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찬찬히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눈으로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점차 뜨거운 응어리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활짝 열린 테라스 창을 통해 밝은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 하늘과 대조되어 보이는 방안의 붉은색 의자가 인상적이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중심에 서서 창 밖을 보는 남자의 어깨는 당당히 펴져 있지만 과하게 힘이 들어가지 않은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나는 남자의 뒤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한다. 단지 그뿐인데도 그가 드러내고 있는 담담한 위용에 감화되어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아직도 나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이 그림은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젊은이>이다.

Young man at his window, (1875).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중 유명한 작품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그림을 만나기 전 수많은 그림들을 넘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어쩐지 떼어지지 않는 시선을 겨우 갈무리하고 책을 덮었음에도 자꾸만 이 작품이 머릿속을 떠나가질 않았고, 처음으로 책을 구매해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사람들과 함께 보는 도서관에 익숙했던 내가 책을 향해 가진 첫 열망이었다.

 

 

 

 

 

 

 

 아직도 나의 배경화면에는 이 남자의 뒷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방에 하나의 그림을 놓게 된다면 처음이 될 그것 역시 이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그 언제까지 이보다 더 나를 동요하게 하는 작품을 만나지 못한다면 말이다.

 

 멀리도 돌아왔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림의 힘을 봄으로써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영감을 받고 위로를 얻을 수 있음을 배웠다는 것이다. 하나 둘 이렇게 가슴을 쥐어짜듯 강한 끌림을 만들어내는 그림, 음악을 만나는 순간은 정말 큰 변화를 만든다. 뮤즈. 뮤즈를 만나게 된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가진 나는 다시 또 그것이 찾아올 날을 위해 그림이 잔뜩 담긴 책들을 보곤 한다. 이번에 펼친 「사랑이 나에게」 역시 그런 연유에서 택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는 나의 두 번째 뮤즈를 찾지 못했지만 첫 번째 그림 에세이를 찾고 있다면 가장 우선으로 권해줄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의 한 구절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그림들이 가득하여 다른 의미에서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 가지 즐거운 목표도 생겼으니, 손에 잡히는 대로 페이지를 펼치고 그곳에 쓰인 고전을 찾아 읽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이 많은 그림들이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지 아무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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