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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3 - 아르놀트 하우저

by 민시원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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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1999). Changbi Publishers

 


*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쌀롱 문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살롱이라는 표기가 맞는 걸까. 어찌 되었든. 쌀롱과 마담이라는 것의 어감이 그 시작에는 지금과 많이 다른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게 기억이 난다. 머리를 하는 헤어숍에서나 하는 말이 아니고, 조금 다양한 범주에서 해석되는 그 마담이 아닌 첫 시작은 지금과는 참 다른 것이었다. '생각'을 하는 '개인'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듣고, 모여드는 곳. 그곳이 바로 살롱이었다. 마담은 마치 수집을 하듯 명성이 자자한 지식인을 자신의 살롱에 모았다고 했다. 그들이 생각을 하게 지원하고 책을 쓰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끔 자신의 살롱을 활짝 열어두었고 그곳에서 곧 지식인들의 탄생이 이어졌다.

 

 그 옛날 쌀롱의 모습은 위와 같았다고 한다. 굳건했던 귀족들이 힘을 잃자 자연히 부르주아가 그 틈으로 발을 끼워 넣었다. 억압과 반항이 맞물리는 첨예한 모습 속에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마는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그 '시민계급'도 결국은 부르주아, 단단히 지워지지 않는 마지노선을 품고 있기는 했지만. 서서히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그 간극 속에는 문화도 포함되었다. 그림과 조각과 음악과 글이 포함되었다. 처음 품게 된 예술에 대하여 새로운 시민계급은 빠르게 그를 흡수하고 장악해나갔다.

 

 

 

 

 

 

 

 음악에서도 변화는 계속되었다.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곧 어느 곳에서는 도태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낭만주의가 도래하자 감정의 격정적 흐름에 몰두하지 않은 음악가들은 구식이 되었다.

 

 바흐도 마찬가지였다.

 

 이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전의 음악은 조금 더 이성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도 감정을 노래하고 격정을 담아내었지만 그것은 아주 농축된, 응어리진 차가운 격정이었다. 차분하게 마치 길고 얇게 뽑아낸 실이 잔뜩 감긴 실타래처럼, 과거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꼬아 비단실을 만들었다.

 

 새로운 시대의 음악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휘몰아치는 격정에 숨이 막힐 듯하면서도 그것을 사랑한 청중의 기대에 힘입어 연주곡은 끊임없는 굴곡을 담았다. 자극은 자극을 불렀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것이다. 극치를 향했다고 느끼는 절정의 높이는 늘 익숙해지기 마련이었고 청중은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되었다.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새 시대의 음악은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낭만주의는 그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만큼 몽환적이고 낭만이 가득한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알지 못한 미지의 것에 대해 갖는 두려움과 호기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죽음과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서서히 두려움은 사라져 갔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유행하던 시기다. 그러나 그 모두가 그 속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건 이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히 그저 자연스럽게, 모여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

 

 권총 자살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끊임없는 고뇌 끝에 방아쇠를 당기는 게 유행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불안정한 사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고, 그에 괴로움을 쉽게 이겨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끝끝내 괴로워하는 삶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그 판단을 하게 만든 게 무섭다. 그것을 낭만이라고 하는 그 말도. 서랍을 열면 보이는 한 자루의 권총은 쉽게 충동질을 시키는 존재였다.

 

 

 

 

 

 

 

현재 읽고 있는 소설이 딱 혁명 시기를 담았기 때문일까. 음울한 분위기가 이 책에도 옮아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굶주린 사람들이 간신히 살아갔고 어디서는 흔들리는 자신의 위치를 불안해했으며 어디서는 겨우 붙잡은 자유와 희망을 움켜쥐어댔다. 같은 존재임에도 같은 시간을 살아도 누구도 같은 곳에 서있지 못했다. 한없이 벌어진 차이가 만들어낸 분노와 슬픔이 자리가 아직도 멀지 않음을 느낀다. 

 

 가라앉은 고요한 느낌이지만 그 조용함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전야제. 밝게 터질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밤 같지만. 터져 오르는 밝은 불꽃이 누구를 향하게 될지. 미소를 담을지, 고요를 낳을지 전혀 모르겠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참아온 분노와 절망이 쌓여 억압을 끊어내기까지 미루어온 해방이 곪아 터져 나온 것일까. 가장 강함 바람을 맞은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만개했다.

 

 글도, 그림도, 음악도, 사람도. 모두가 피어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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