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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 - 김치호

by 민시원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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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호: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2020). 한길사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으며 알게 된 몇 가지 중 하나가 인간이 예술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주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큰 몇 질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태초에는 예술적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히 기록을 위해 남긴 그림과 조각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풍류와 유희를 위한 수단으로 예술이 도입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이 참 묘한 부분이다. 수업에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번식을 통한 자손의 연결이라고 한다. 원초적인 표현이라 질색할 수도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인간도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인 생물이고 그렇기에 우리에겐 생존과 번영이라는 목적이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다.

 

 여기에 오히려 문화와 예술이 들어오기 시작한 게 새롭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지적인 능력과 문명의 극치에 달하는 시점이 되었기에 이것들을 생산하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배를 곯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더 이상 먹고 생활하는 생존의 문제가 삶의 전부가 아니게 되었을 때 여유를 가진 동물, 인간은 예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술은 그만큼,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예술은 여러 직업을 만들었고, 필요를 만들었고, 시장을 만들었다. 각기 다른 감성과 각기 다른 눈을 가진 인간은 단 하나의 그림과, 도자기, 조각에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였고 그것이 거대한 사회적 흐름으로 연결된 것이다.

 

 

 

 

 

 

 

 또 너무도 즐겁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1990년대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술품을 훔친 미술품 절도범의 귀재, 브라이트비저의 이야기다. 미술과 조각 등 예술품이 가지는 가치를 인식하게 된 인간은 그것을 표현하고 주고받기 위한 수단으로 값어치를 매기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거래를 통해 매매가 시작되었지만 미술품은 그 존재에서부터 특이한 차이점을 보이게 되었다. 매매에 있어 값어치를 매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정확히 정해진 값에 따라 거래되곤 한다. 그러나 그 예술품이 오랜 역사를 지닐수록,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진 것일수록 쉽게 값을 정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경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즉석에서 호가를 하며 작품에 대한 값어치를 만들어낸다. 오랜 세월과 이야깃거리와 가치가 담길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 예술품의 값이다. 그러나 동시에 또 예술품에는 개개인의 호불호가 강하게 들어가는 상품 중 하나이다. 유명한 작품들만을 모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컬렉션을 완성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미술품 경매엔 강한 선호도가 작용한다.

 

 그에 일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의아한 경우가 남발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차마 내뱉지도 못할 금액을 지불한 사례들을 보고선 이해 못할 표정을 짓게 된다. 아니 지을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을 향한 눈은 그 누구도 정확히 같을 수 없을 테니.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거래되는 거대 시장을 만든 미술품은 역으로 너무도 강렬한 선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도 했다. 브라이트비저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저지를 수 없는 절도는 손기술을 자랑하기 위한 것도, 되팔아 엄청난 부를 쌓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그 많은 예술품을 자신의 품 안에 둠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 그 하나만을 바란 것이다. 예술이 자랑하는 아름다움은 인간의 눈을 멀게 만들고 범법의 행위도 불사하게 만든 것이다. 가장 기본의 인간의 욕구가 충족된 이래로 시작된 예술의 향유가 되려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의 침범을 자아낸 것이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만의 눈에 차는 것들을 모아 둔 자신만의 컬렉션을 완성하고 싶은 것은 모두에게 같은 것이었나 보다. 단지 그것이 이 책에서 나타나듯 예술의 대한 것이든, 그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은 모두가 다른 종류의 것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곤충에서, 동물에서, 식물에서, 하늘에서, 돌에서, 태양에서... 우리 곁에 있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겐 아름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식물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는 편이었다. 수많은 종류와 수많은 종들 사이에서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고, 나의 심미적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 둘 집으로 사들이게 되었다. 그것 역시 일종의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겠지 싶다. 나의 가장 큰 관심과 목표는 식물에 있다. 미술품이라고 하면 그저 바라보았을 때 색감이 좋을 뿐 크게 와 닿지는 않는 것들 뿐이었다. 단지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그림 정도.

 

 

 

 

 

 

 

 절반이 지나서야 한국의 미술품에 대한 작가의 식견을 엿볼 수 있지만 어쩐지 눈과 생각은 앞에서 머물게 되고 만다. 예술과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선망의 과정을 참 흥미롭게 설명을 해놓았다. 문화예술을 담은 교양 도서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지루하고 딱딱한 어려움이 가득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풀어놓은 여유가 느껴진다. 질 좋은 종이를 넘기며 그에 새겨진 작품들과 이야기를 보는 건 생각을 무한히 뻗어나가기에 너무도 적절한 환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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