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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스펙터 Spectre, 2015

by 민시원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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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007 스펙터

15세 관람가

액션/범죄/스릴러

폭력성 ★

선정성 

공포 


*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주의 부탁드립니다.

 

 

출처 : 다음 영화

 

 

 드디어 007 중 한 편을 리뷰하게 되었다. 시리즈물, 액션물 등 장르나 구분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봐온 영화를 물으면 007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어릴 때부터 007 시리즈를 자주 봐왔는데 부모님께서 젊을 적에 많이 보시고 좋아하신 영화라 그런 듯하다. 그 영향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가벼운 액션 영화가 되었을 정도.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에 학벌, 말솜씨, 사격, 격투,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까지. 빠지는 곳 하나 없는 것이 바로 007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007이라는 인물은 늘 두근거리고 설레는 존재이다. 역대 007 배우들 중 익숙한 것은 피어스 브로스넌과 다니엘 크레이그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배우는 피어스 브로스넌이었다.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음에도 배우마다의 눈빛과 말투, 태도의 미묘한 차이가 다른 느낌을 주는 걸 느낄 수 있는데 피어스 브로스넌의 007은 조금 더 가볍고 위트 있는 느낌이랄까.

 

 

 

 

출처 : 다음 영화

 

 

 다니엘 크레이그는 엄마가 가장 좋아한 007 배우다. 금발의 푸른 눈에서 오는 매력이 있다고 했는데 괜히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 마음속 1위는 피어스 브로스넌이기는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묵직하고 깔끔하며, 세련됐다. 어디서든 여유를 잃지 않고 상대의 신경을 잘 파고드는 언변이 대단한 인물이다. 그 매력은 영화 상의 캐릭터들에게도 통하는 것이었는지, 카지노 로얄 때부터 등장해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하여 화를 돋우던 미스터 화이트가 쇄약 한 모습으로 제임스 본드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은 참 무상했다. 폭력과 범죄를 주도하던 이들에게도 젊음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 늙고 힘없는 타깃이 될 순간이 찾아온다. 조직에게 내쳐져서 조금 더 일찍 찾아온 죽음을 대비하던 페일킹의 모습이 놀랍고 애잔했던 것은 과거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서로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으나 이제 그의 눈 앞에 남은 건 그 제임스 본드 밖에 없으니.

 

 

 

 

출처 : 다음 영화

 

 

 위기의 순간은 주인공을 성장시키기에 주인공이 몸담고 있던 조직이 와해되는 것은 첩보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 소재이다. 스펙터에서도 마찬가지로, MI6는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덩달아 홀로 싸움에 놓인 제임스 본드의 곁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이끌어가는 인물이 말로리다. 스카이폴에서 존경하던 주디 덴치가 죽음을 맞이하고 (Double-O-Seven이라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다) 새로운 수장이 된 말로리는 MI6를 이끄는 M이 되자마자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럼에도 통솔력 있게 Q와 머니페니를 주도하고 약간의 액션도 선보이고. 멋있다. 스카이폴의 초반만 해도 긴가민가 했는데 스펙터에서 새로운 M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출처 : 다음 영화

 

 

 아무래도 예전 007 시리즈도 봐왔다 보니 내 머릿속의 머니페니는 제임스 본드를 짝사랑하는 존재에 머물렀던 것 같다. 본드와 맺어진 여러 본드걸과는 달리 영원히 비즈니스 적인 관계에 머무르면서도 그래서 안전한 인물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니페니도 나오미 해리스가 맡은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게 보통 그 흐름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머니페니다. 현장에서 일하던 저격수 출신의 머니페니라는 설정 덕분인지 과거 시리즈 때와는 달리 본드와 동등한 선상에 서있는 인물로 한발 더 나아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본드의 사랑에만 목매지 않고 한결 더 여유 있는 모습을 가지게 된 머니페니. 짧게나마 보여줬던 스카이폴에서의 액션이 그리워서 현장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머니페니로 들어왔다는 장면에서는 꽤나 놀랐지만 제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출처 : 다음 영화

 

 

 그런가 하면 007 시리즈를 즐겨왔던 이들에게 Q는 여전히 제임스 본드와 티격태격하던 나이 든 요원이 아닐까 싶다. 데즈먼드 루엘린. 내가 태어나던 해에 떠나간 사람. 제임스 본드와 서있던 그 모습이 그립다. 벤 위쇼의 Q는 조금 더 본드에게 말리는 느낌이다. 처음 007 시리즈에 등장해서 본드가 잠옷을 운운하며 애송이 취급을 할 때는 정말 이게 뭘까 싶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인지 007 속에 맞아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본드를 보필하는 역할이면서도 조금 더 중심인물로 활약하게 된 모습이 좋다.

 

 

 

 

출처 : 다음 영화

 

 

 이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보다 더 안 좋아했던 게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꼭 보던 게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 시리즈였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도서관에 자주 데려가 주신 덕분에 많은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고 소설을 참 좋아했었는데 셜록 홈즈는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책이었다. 그 책이 드라마로 나왔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몇 번이고 다시 본 드라마였고 그 때문에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셜록, 앤드류 스콧은 모리아티였다. (물론 영화 셜록 홈즈도 정말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리아티 교수가 맴돌았는데 혹시 여기서도?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비슷한 느낌이다. 한 배우를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기억되기에 좋은 것일 테지만 배우의 입장에서는 또 벗어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으니 애매하다. 최근에 제77회 골든글로브에서 영화 1917로 얼굴을 잠깐 봤는데 잠깐인데도 참 반가웠다. 주연으로 더 흥하는 날이 오기를. 참고로 77회 골든글로브에서 피어스 브로스넌도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와서 짧게 캠페인 홍보를 했는데 늙어가는 모습마저도 당당하고 참 멋있는 사람이다.

 

 

 

 

출처 : 다음 영화

 

 

 스펙터의 여주인공으로 나온 건 레아 세이두. 미스터 화이트의 숨겨둔 딸로 똑똑하고 유능하다. 에바 그린 이후로 본드에게는 영원한 연인은 없을 것 같았는데 레아 세이두의 매들린 스완은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본드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이 드레스가 제일 아름다워서 포스터도 갖고 있었는데 어디로 가버렸는지. 매들린 스완으로서의 레아 세이두도 좋지만 조금 더 좋아하는 건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사빈 모로를 맡았을 때다. 폴라 패튼과의 액션은 참 명장면이었다. 살짝 벌어진 이가 매력포인트인 배우.

 

 

 

 

출처 : 다음 영화

 

 

 한 번씩 꼭 나오는 액션담당 악역은 데이브 바티스타가 연기했다. 이 영화를 보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봤지만 둘은 전혀 매치가 안됐었다. 스펙터에서 나온 그의 모습은 마치 과거 죠스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웬만한 공격은 먹히지도 않을 정도로 강한. 손에 셀 수 있을 만큼의 대사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몸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배우였다.

 

 

 

 

출처 : 다음 영화

 

 

 본드와 펼치는 자동차 액션신은 정말 장관이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봐도 좋은 차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급의 차량들로 액션을 하니 눈이 즐거웠다. 밤의 한적한 도로를 두 차가 질주하는 모습은 가슴이 뚫리는 시원한 맛이 있었다. 푸른색의 헤드라이트로 길을 비추는 차의 모습을 보니 참 잘빠졌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차는 애스턴 마틴 DB10과 재규어 C-X75라고 한다. 클래식한 애스턴 마틴의 DB5도 좋고.. 딱 봐도 예쁘니 가격은 굳이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출처 : 다음 영화

 

 

 과거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가 우스갯소리로나마 결혼한 여성이 취향이라고 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스펙터에서는 모니카 벨루치가 그 역할을 했다. 내 세대의 배우는 아니었기에 상당한 분위기를 가진 배우구나라는 생각만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들어보니 아주 유명한 배우라고 했다. 젊었을 적의 시절을 보니 왜 세계에서 대표적인 미녀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가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렇게 전성기를 이미 보낸 스타들을 볼 때, 나 역시 그 당시의 사람이 되어 그들의 영광이 어떤 정도였는지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의 청춘을 함께 보낸 나의 시대의 청춘스타란 다른 느낌일 테니 말이다.

 

 

 

 

출처 : 다음 영화

 

 

 007 시리즈의 최대 끝판왕의 악역은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한스 오버하우저다. 아주 오래전 007 시리즈에서 봤던 무릎에 앉은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이 생각났다. 본드의 최대의 적인 스펙터 조직에 대한 영화가 과거에도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얀색 털이 풍부한 고양이를 키운다는 상징은 여전했다. 엄청난 기백은 없는 듯싶다가도 약간 돌아버린 듯한 모습과 본드와 은근히 닮은 것 같은 외모. 결말을 보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보고 난 뒤에도 든 생각이 '이건 다니엘 크레이그를 위한 영화다' 였으니. 그때는 이 영화가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지막으로 주연을 맡은 007 시리즈라는 말도 있고 해서 아쉽기도 했고 영화 자체에서도 모든 초점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 다음 영화

 

 

 다음 007 시리즈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진짜 마지막 007이라는 얘기도 있고 앞으로의 007은 흑인 여자 배우 라샤나 린치가 맡을 것이란 얘기도 있고 계속해서 남자 배우가 007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직 정확한 소식이 들리지 않은 터라 계속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바뀌어가며 들리는 상황이다. 변한다는 것은 낯설고 어색하고, 마음 한구석에서 예전의 것이 그리워 허전함이 느껴지지만 어떻게 변하든 또 바뀔 007의 모습 역시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아끼고 즐겨온 시리즈인 만큼 그만큼의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말이다.

 

 

 

 

출처 : 다음 영화

 

 

 못다 한 이야기가 많은데, 007 시리즈를 대표하는 것 중 또 하나에 오프닝 타이틀이 있다. 늘 당시 최고의 가수들이 노래를 하고 그에 맞추어 여자들이 나신으로 춤을 춰왔다. 그것도 최근 작에 들어서는 조금 줄어들고 대표 인물에 대한 모습들이 보이는 등의 변화를 맞았다.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여전한 것은 좋은 ost 정도. 007 스카이폴에서 아델이 부른 Skyfall도 좋았지만 스펙터에서 샘 스미스가 부른 Writing's On The Wall은 최고였다. 노래를 듣고 있자면 아직도 눈 앞에 장면들이 선연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무슨 뜻일까 궁금하여 찾아봤던 게 기억난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 불길한 징조'정도라고. 매번 좋은 곡들이 007에 ost로 삽입되어 왔는데 영화를 다 보기가 어렵다면 노래라도 찾아서 들어보심이 어떨까.

 

 

 

 문화생활을 그다지 즐기지 않던 우리 네 가족이 처음으로 다 같이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스펙터였다. 아마 양주에 있던 메가박스였던가. 2015년이라니. 2020년의 지금과 달리 고등학생이던 시절. 아득하다. 나는 아직 성장할 준비가 안되었는데,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는 걸 벌써 느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빨리 어른이 되길 바라는 아이는 아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영원히 미성년으로 남고 싶었달까.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밍밍하게 어른이 되었다. 나도 이제 성인이 되어보니 조금은 알겠다. 짧은 수년의 시간이 나를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다지 두려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일이라는 것.

 

 너무 좋아하는 영화의 이야기라 그런가 또 한없이 길어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스펙터 속 제임스 본드의 말을 되뇌어 보며 이만 마무리하려 한다.

 

 

"Tempus Fugit"

세월은 유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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