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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한주 기행 - 백웅재

by 민시원 202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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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웅재: 우리 술 한주 기행(2020). Changbi Publishers

 


*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여름날 멀리 떠난 진도에서 찾은 것은 홍주 판매장이었다. 이렇다 할 테마를 잡고 움직이는 편이 아니라 가볍게 도착한 곳에서 우연히 찾게 된 것이 홍주 판매장이었을 뿐이다. 어느 누군가가 인터넷에 남긴 글 속에 있는 붉은 홍주의 모습이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홀린 것처럼 부랴부랴 검색을 해서 찾아갔더랬다. 근데 그게 그렇게 색다른 재미가 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찾는 박람회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사곤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배운 재미였다. 마시기를 즐기기보다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양새를 찾아 헤매고 그에 맞는 것을 찾아서 구매를 하는 순간은 즐거움이 되었다. 들어가는 재료와 소요되는 시간에 따라 다른 빛깔과 도수를 가지고 전시되어 있는 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가도 세월이 담겨있는 집안의 술병들을 보면 또 묘해지는 거다. 내 나이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우리 집에 있어온 것들이 이 작은 병들에 담겨있다는 게. 기념일을 맞이해 술을 담갔었다는 엄마 아빠의 말을 들으면.

 

 자리 잡고 있던 호기심들 덕에 자연히 한주 기행이라는 제목에 끌렸다. 소개를 보고 있자니 지난여름의 여행이 딱 떠오르는 거다. 그리곤 이 책을 읽어둠으로써 또 다른 곳을 향한, 다음의 여행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겨났다.

 

 

 

 

 

 

 

 처음 술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은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도덕 선생님의 말이 시작이었다. 코엑스였던가 그 어떤 곳에서 칵테일 교육을 받았다는 경험담을 들었던 것이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지고, 상큼하고 달달한 맛에, 화려한 장식까지. 신비한 것이 가득한 듯한 칵테일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었을 때도 궁금한 것들과 관심사는 온통 이 외국의 신기한 술에만 쏠려 있었다. 소문으로만 들어봤던 것들을 마셔보고 취향인 것들을 찾아낼 때의 기분 좋은 느낌은 두근거림까지 안겨주었다.

 

 안타깝지만 한주(韓酒)와 나의 거리감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술이 세지 않아 취하기 위하여 쓰기만 하게 느껴지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 과정은 내겐 고역이었다. 막걸리라 하면 또 어떤가 시큼하고 탁한 질감이 혀에서부터 느껴지는 오래된 느낌이었을 뿐.

 

 비 오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라고, 기름진 삼겹살에는 소주를 먹어야 한다고, 밥은 남겨도 술은 남겨선 안된다고 하는 주당들의 말은 멀기만 했다. 이왕 씁쓸한 이 알코올을 삼켜야 한다면 맛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게 최소한의 원칙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한주 기행을 읽으며 몰랐던(적어도 모르고 싶었던) 우리 술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 증류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소주, 쌀로 빚는 우리의 술이 막걸리라고 하는 간단한 것들이 아니어도 우리의 술은 오랜 시간만큼이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병입의 과정을 지나고 나서도 생생하게 발효를 멈추지 않은 시큼하고 톡 쏘는 탄산을 가진 것이 우리의 술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멀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프리미엄 한주를 다루겠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등장하는 것들이 그나마도 익숙한 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통 양조장이라고 하는 것들부터가 그랬다. 정부의 주재하에 우리 전통 양조장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낸 비밀스러운 분위기 때문일까. 언제나 스쳐 지나가면서 한 번씩 보곤 했던 양조장들은 전통가옥의 형태이면서도 굳건히 잠긴 대문을 앞에 두고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항상 조용히 소리를 죽이거나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호기심만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작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국기행 등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거다.

 

 

 

 

 

 

 

 한주 기행 덕분에 이런 것들에 대해 내심 가져왔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그것도 양조장과 전통주 말고 나 혼자서만 가진 친밀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나도 나만의 테이스팅 노트를 기록하여 자신에게 맞는 맛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명주라고 하는 것들이 그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쓰기만 한 음료들이 그 쓴맛을 가지게 된 배경이랄까 오랫동안 지녀온 그 시간 자체를 유지한 배경을 더욱 알고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우리의 쌀로 빚은 한주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말이다.

 

 다른 것들은 우리 것이 좋다고 하면서 한국산만 찾아대다가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자꾸 밖으로만 돌고 즐겼던 술에 대해서도 이제는 안으로 조금 더 우리의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잘 닦여있는 듯한 지금도 아직은 시작하고 있는 단계라 조금씩 피어나고 있는 수준이지만 그만큼 한주가 뛰어오를 높이가 가늠되지 않을 지경이니까. 한 가지 종류로 단정 짓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변형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한주에 관심을 투자해보는 것이다. 

 

 

 

* 한주: '전통주'의 대체어로, 모든 종류의 '한국 술'을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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