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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뜨 1 - 샬럿 브론테

by 민시원 2020.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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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 빌레뜨 1 (2020 개정판). Changbi Publishers

 


 

 

 

 

 23살. 곧이어 찾아올 나의 나이. 그 나이에 그녀는 가족을 잃었다. 그것도 전부.

 

 루시 스노우는 자신의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더 이상 도움을 줄 친척도, 기댈 곳도 없어졌다. 한순간에 그녀를 정의하던 사회적 모든 구실이 사라진 것이다. 때때로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과분하다고 느껴질 때, 행복한 마음이 가득해 이 순간의 상실이 두려워지기 시작할 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고 그것이 내 삶의 위로이자 동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더욱 그 두려움이 자랐고 이 같은 생각을 한다. 내 곁에 있는 이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면 나는 어떡하지? 내게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이 생길 수 있을까?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졌고 노화의 속도도 느려져간다고. 그래서 80년대 부모님들의 청춘과 우리 시대의 청춘에 차이가 있는 거라 했다. 같은 나이임에도 이전 시대의 분들이 더 조숙해 보이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루시 스노우가 이렇게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이.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혼자가 되어 자신을 돌보고 나아갈 방향이 없는 시대에 무엇인가를 당장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람을 이렇게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일까. 지금처럼 여성도 사회에서 지위를 갖고 일과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녀가 더욱 막막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거나 집안일을 하는 시중을 드는 일뿐.

 

 스노우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그것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향해서 그에 모든 것을 다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하여서였다. 그러나 순식간에 사회의 모든 것을 잃고 일을 시작하면서도 그녀에게는 변치 않는 것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생각하고 관찰하고 지켜보는 시선이 그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쓰러져 있는 비관하는 것이 아닌 모험과 일을 선택했다.

 

 

 

 

 

 

 

 그래, 어쩌면 시절의 조숙함이 아닌 순간의 상실이 그녀를 그렇게 나아가게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남아있는 삶을 책임져줄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했기에. 지금에 와서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의 나이지만 그녀처럼 할 수 있을까. 전혀. 내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이렇듯 갑작스럽게 닥치게 되면 나도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게 될까. 전혀 그런 것을 바라거나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생각하기도 싫지만). 그래서인지 가끔 답답해지기도 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할 줄 아는 거라곤 책상에 앉아서 책 보는 것밖에 없다는 게 말이다.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생각해보면 그런 걸.

 

 여성이라 집에 있고, 여성이라 안사람의 일을 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지위를 찾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게 여전히 공부를 하는 것이라,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할 줄 아는 게 책상에 앉을 뿐이라니. 루시 스노우의 행동을 선망하면서도 절대 닮을 수 없을 거라고 믿어지는 건 이 때문일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시절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그녀의 이야기에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일찍 방향을 잡아 길을 선택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에 집중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만 하던.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선택과 도전과 결과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고,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을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너무 부족함을 느낀다. 반면 그녀는 그리 할 수밖에 없기에 끊임없이 바라보고 들어온 것들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에 나선다. 그렇다고 누구와는 다른, 독특하게 눈에 띄는 정신을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와 같이 조용하고 고요한 일상을 사랑하는 그녀였지만 그저 해야 할 것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 계속해서 무언갈 해나가야 함을 느꼈을 뿐이다. 

 

 

 

 

 

 

"영국 여자들은 모두 모험심이 대단하군요."

p. 99

 

 

 

그럴 리가 없었다. 단 한순간도 그런 것을 꿈꾼 적이 없었다.

나는 연인이나 숭배자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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