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년의 맛

by 민시원 2020. 5. 3.
반응형

 

 

앵무 : 초년의 맛 (2017). Changbi Publishers

 


 

 

 

 

 우리 가족은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길 그렇게 좋아했다. 국내 곳곳 안 누비고 다닌 곳이 없을 지경인데, 가보면 알겠지만 하나 제대로 다녀온 곳을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중학교 때도 사실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데 초등학생 때는 무엇하랴. 그냥 부모님은 그러려니 하시며 이것저것을 설명하며 기억을 되살려주시곤 한다. 근데 이렇게 기억이 좋지 않은 나지만, 요즘엔 그 장소에서 먹었던 것들은 찰떡같이 기억을 해내서 가족들을 웃기곤 했다. 당장 몇 년 전 일도 사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아니니 당당하지만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를 만큼 신기하게도 먹었던 것들은 그렇게 기억이 잘 난다. 이를테면 그때의 맛, 기억, 함께 했던 얘기, 봤던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한 번에 떠오르곤 한다.

 

「초년의 맛」은 그런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놓은 책이다. 음식하면 떠오르는 일상을 담아놓은 책.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평범하지만은 않지만 겪어봤을 법한 초년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음식과 에피소드라..

 

 

 

 

 

 

 

 어떤 내용이라 생각하면 좋을 지 딱 떠오르는 책이 있다. 비슷하게 음식과 함께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심야식당」과 비슷한 흐름이라 할 수있다. 문득 떠오른 건데 생각해보면 할수록 닮은 구석이 있는 듯하다. 다만 「심야식당」은 밤늦게 찾아오는 밤 손님들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다면 「초년의 맛」은 우리 청년들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행복하다가도 고통받고 즐겁고 슬픈 나날이 번갈아 지속된다라는 건 누구네 삶에서나 같은 것이기에, 그런 일상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겐 초년의 맛이 조금 더 쌉싸래했다. 심야식당이야 그냥 별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열 두시가 지나서야 문을 여는 까닭일까 뒷세계, 밤의 화려함 속에 사는 이들의 사연들이 대부분이었고 말 그대로 '어른'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그냥 멀리 동떨어진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었다. 반면 초년의 맛은 정말 나 자신을 염탐하여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제의, 오늘의, 내일의 내 삶과 꼭 닮아있었다. 지극히도 지독한 현실이라 때때로 눈을 감고 슬픔에 잠겨 눈물을 뽑아냈다. 머리가 아플 때까지.

 

 비참하고 아픈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울타리 안에 있는 어린 아이들이 아니었고, 끌어안고 진심으로 안아주는 이를 찾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그게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짓궂고 개구지지만 솔직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겉과 속이 달라지는 스스로를 보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답답하다. 

 

 

 

 

 

 

 

 초년의 일상을 그대로 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늘 끝엔 해피엔딩이었다. 괴리감이 느껴진다. 우리의 삶 역시 굴곡만 지지는 않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나 알 고 있는 것은 그 굴곡의 깊이가 끊임없이 내려갈 때도 역시 있다는 것이다. 초년의 맛 중 한 에피소드가 그런 생각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서른 줄의 나이에 있는 남자 친구는 어이없게도 자신보다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그에 다가오는 것이 본인보다 훨씬 더 어린 고등학생이라.. 너무 동화 같지 않은가. 쓰레기 같은 애인을 보란 듯이 훨씬 어린 사람과의 관계를 암시하다니. 여기서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끝으로 에피소드가 끝났더라면 분노를 삭이기 어려워 씩씩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차라리 그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요 몇 년 사이에 변화된 사회적 감성 때문인 듯하다.

 

 나보다 꿈에 가까운 애인을 두고, 바람난 그 애인을 두고 내 커리어를 계속 쌓으려 도전하는 모습을 담는 것이 차라리 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끝이 성공이든 아니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괴롭히는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꿋꿋이 살아가는, 그런 모습일 뿐이니 말이다. 더이상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공주님, 왕자님이 없음을 안다. 그냥 나를 담담히 다독이며 나를 아끼고 사랑해줄 것이 누구보다 자신 스스로임을 더욱 깨닫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2020년 지금의 시선에 대해 얘길하다보니 떠오르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떡볶이 서비스>다. 여기서 주인공은 철없는 어릴 적의 선택으로 동네에서 유명한 떡볶이 포차를 망하게 만드는 일을 벌이고 만다. 이건 주인공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자 마음의 죄가 되었다. 그래 어릴 적의 악의 없는 행동이 불러온 나비효과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한 것은 제삼자인 멀리서 지켜보는 나일뿐이다. 후에 먼 시간이 지나 다시 떡볶이 장사를 하는 주인을 다시 만나고, 죄를 갚는 마음으로 단골이 되었다는 이야기의 끝맺음에 의문이 남았다. '주인의 이야기는?'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너그러이 '그래 그럴 수 있지, 잘못을 반성하면 된거야'하고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그냥 이게 픽션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만 하였다. 어린 마음에, 그럴 줄 몰랐어서. 그 말이 주는 무서움을 이제 우리들은 절절히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왠지 있을 수 있을 법한 스토리에 더 가슴이 철렁해진다. 촉법이니 학생이니 하는 그 대상의 무게가 이전과 달리 너무도 무거워지고 있음을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에피소드로 취급되는 일들의 주인공이 자라서, 일반 사람들 속에 섞여 마음속 죄를 토로하는 것 역시 초년의 맛이 된다면, 누구도 용서한 적이 없지만 자신의 마음의 죄를 덜기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려 한다면, 그것이 초년의 맛이 될 수 있는지 끝내 의문이 들었다.

 

 

 

 

 

 

 

 먹고 살고 관계를 맺고. 우리는 그렇게 초년의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방향은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고, 우리의 삶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되어 간다. 마냥 힘들고 괴로울 것 같은 초년의 시간이지만 요즘엔 또 마냥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비치곤 한다. 쌉쌀한 맛이 가득 담긴 초년의 맛을 읽고 있자니 이런 변화가 반갑게 느껴진다. 하나뿐인 내 삶을 위해 나에게 가장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 또 다른 점에선 극도로 개인화된 시선일 수 있겠으나 그렇게 생각된다. 그냥 세상의 가시가 두려운 초년들이 세워낸 작은 방패에 불과하다고. 초년의 맛이 조금 더 달달한 것이 될 수 있게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