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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by 민시원 2020.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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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hakespeare : Hamlet (2016). Changbi Publishers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등장인물을 볼 때서부터 궁금한 인물이 있었다. 오필리아.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속 주인공 역시 오필리아다. 하 정말 안 본 눈 산다는 말이 떠오르는 영화였다. 나는 그게 파시즘이 넘쳐 흐르는 전쟁 얘기일 줄 몰랐지 판타지 동화를 가장했던 판의 미로에서 동화 속 상상에 빠져 살다 결국 끔찍한 현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 오필리아가 햄릿에서는 어떤 인물일지 정말 궁금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햄릿」의 오필리아도 사랑이라는 낭만에 빠져 있다가 아버지와 햄릿이 남긴 지독한 현실에 미쳐 죽음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오필리아의 비중은 사실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햄릿의 약혼자로 햄릿을 사랑하지만, 아버지 폴로니어스와 클로디어스의 모략질에 수단으로 이용당한다. 그러고 나서도 미쳐 돌아다닐 뿐이라니.

 

 

 

 

 

 

 

 판의 미로에서는 여러 해석이 엇갈리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필리아가 현실의 괴로움을 못이긴 나머지 상상 속에 빠져 살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되니 환영, 가장 순수했던 존재로서의 죽음. 비슷한 흐름이다. 판의 미로에서 괜히 같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아니겠지. 아 혹시 판의 미로가 궁금해 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극구 말리겠지만, 적어도 제발 무슨 내용인지 '진짜' 줄거리라도 먼저 찾아봤으면 좋겠다. 포털사이트에 쓰여있는 줄거리 같은 영화는 절대 아니니까. 싫어하는 요소가 똘똘 뭉쳐있어 언젠가 리뷰를 쓸지 장담할 수조차 없는 영화다. 그래도 코드가 맞다면 생각할 거리도 있고 좋아할 사람도 있을 테니 신중히 알아보고 선택하길!

 

 

 

 

 

 

 

 1막 3장의 초반 즈음에만 해도 폴로니어스를 충직하고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다른 의미로 참 충직하긴 했지만). 아들 레어티즈가 떠나기 전 그가 해주던 충고는 참 감동적이었으니까. 아들이 바른, 옳은 길을 걷길 바랬던 건지 한참이나 늘어놓았던 말들이 너무 좋아 표지를 해두었었다. 이를테면 '누구 의견이든 들어두되, 네 판단은 미뤄둘 것.', '너 자신에게 진실할 것. 그리하면 밤 뒤에 낮이 오듯 자연스레, 누구에게도 거짓되지 아니할 것이야.' 같은 말들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 같은 작자가 실은 무슨 일이든 엿듣고 나서고, 참견질을 해대는 작자였다. 게다가 그렇게 똑똑한 양반이 오필리아에게 하는 말은 결국 '순결하라!' 나원참. 레어티즈 건 폴로니어스 건 왜들 그리 오필리아를 잡아두지 못하여 안달복달인지. 그네들이 그리 일러두지 못하면 오필리아가 뭐 타락해 어찌 되는 것처럼. 여인네들은 성에 쉽게 휘둘리는 그런 존재로밖에 자리잡지 못했다는 건지. 가여운 오필리아는 정말 말 그대로 '가엽게만' 휘둘리고 미쳐서도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지금 같았으면 먼저 햄릿에게 사랑을 표현했으려나. 여하튼 햄릿이 광인처럼 행동하고 나다니는 것에는 오필리아와의 실연 때문이 아님에도 이를 철석같이 믿고 촐랑대는 폴로니어스를 떠올리면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실제 극으로 봤다면 상당한 웃음거리였겠지.

 

 

 

 

 

 

 

 사실 햄릿이 오필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건지도 의아했었다. 광인을 연기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냉담하고 마주치면 성적인 농담만 쳐대고 비꼬아 대기에 바빴는데 과연 정말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오필리아의 무덤 앞에서 레어티즈와 멱살잡이를 하며 불같이 화내는 햄릿의 모습은 솔직히 당황스러운 부분이었다. 정말 이 정도로, 그렇게 사랑하는 거였다고..? 너무 많은 과업을 앞두고 있어 미처 진실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건지 답답한 마음이 그저 오필리아의 무덤 앞에서 터져 나왔던 건지 알 길이 없다.

 

 

 

 

 

 

 

 

헤카베 때문에!

헤카베가 그에게,

그가 헤카베에게 무엇이기에,

헤카베 때문에 그가 우는가?

p.85

 

 

 

 너무 아쉬운 나머지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긴 했지만, 햄릿 역시 참 안타까운 영혼이다. 어찌 보면 가장 이해가 되는 인물. 아버지가 죽은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 미쳐가는 상황에 슬퍼하는 것은 제밖에 없는 것 마냥 동떨어진 느낌. 연기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미쳤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거트루드는 어찌 그리 평온할 수 있는 것인지.

 

 그에게 남은 오직 한 사람. 호레이쇼가 없었더라면 햄릿은 외로움에 더욱 미쳐 날뛰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선왕의 유령을 발견한 사실을 오로지 햄릿에게 고하기로 결정하여 햄릿을 일깨워준 것 역시 그였기에. 만일 햄릿이 선왕의 유령을 보지 못했더라면 비극도 없었겠지. 오필리아도, 햄릿도, 거트루드도, 폴로니어스, 클로디어스까지 모두 다 한 사람의 죽음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억울한 죽음을 벗지 못한 선왕 햄릿만 남아 햄릿의 마음속 한 자리를 차지했을 터.

 

 

 

 

 

 

 

 하지만 햄릿은 선왕의 유령을 만났고 오직 복수만 별렀다. 결국 모두가 독에 스러졌지만 이 싱숭생숭한 결말이 오히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찌 되었든 악인을 죽음으로 처벌하는 햄릿의 복수가 완성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확실한 끝맺음. 햄릿 역시 끝을 맞았지만 그의 삶을 뒤덮었던 복수심과 오직 하나뿐인 목적을 이루었기에 더 이상 그를 붙잡을 것이 없다. 레어티즈와 용서를 주고받는 그의 모습이 덧없다.

 

 잠시간의 시간이 더 남았더라면, 그 독이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더라면 햄릿은 본인의 입으로 모든 억울한 것들을 쏟아낼 수 있었을 텐데. 질척한 미련이 남았을 것만 같았으나 그마저 털어버리고 그렇게 모두 끝나버렸다.

 

 

 

 

 

난 죽네, 호레이쇼. 가여운 마마, 안녕.

이 참극 앞에 하얗게 떨고 있는 여러분,

이 장면의 대사 없는 배우, 관객일 뿐인 여러분,

 

시간만 있다면 -

오, 얘기할 수 있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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