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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곽한영

by 민시원 202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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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영 :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2017). Changbi Publishers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누군가 그 자료들을 가지고 있더라도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 두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p. 75

 

 

 

 

 아련하고 따뜻한 것들로만 기억되었던 나날들이 깨어지는 기분은 정말 좋지 않다. 그래서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추억 속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동화로만 받아들여지지 못하니까. 아마 다른 사람은 또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동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글쎄 사실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단언할 만큼 자신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을 쉽게 지나치는 것은 또 아니라는 알량한 마음이 남아서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누가 강제하지 않았지만 내 나름의 마음속 기준을 세우고 나름 지키려 노력 중인데. 속상한 일들은 계속 생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같은 상태에서 무언갈 접했을 때, 그것이 내 마음에 꼭 맞아 들어오는 것이라면 정말 기분이 좋고 꼽아두고선 두고두고 계속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뒷이야기를 알게 되면 한없이 또 꺼려지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돼버린다. 왜 그리 불편하게 사느냐고 그냥 즐길건 즐기면 되는 거고 따로 생각해보면 안 되냐고들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도덕적 기준에 부합한 지 알아보고 들어가는 것도 참 번거로운 일이다.

 

 이런 일들은 어째선지 계속 있어왔다. 너무 좋아하던 노래를 만든 작곡가, 가수의 행적에 문제가 제기 되며 충격을 받아 다신 듣지 않겠다며 다짐을 하기도 하고 대작이라 생각했던 영화들에 출연한 배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행과 행동을 보여 한순간에 깨어지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겪었던 것은 인셉션에 대한 일이다.

 

 머리아프게 만드는 영화를 싫어한 터라 인셉션 역시 골치아픈 부류로 생각했었는데 자꾸만 이를 드높이는 평들에 궁금한 마음이 들어 자꾸 반복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스토리와 의미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뒤에야 왜 그리 사람들이 인셉션에 열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근데 문제는 인셉션 영화가 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따라 했다는 글을 보고 난 뒤에 시작됐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파프리카>를 인셉션이 표절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보고 나니 어찌 그리 닮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지 놀랍고 황당했다.

 

 여전히 인셉션은 사람들에게 공상적인 내용이 가득 담긴 영화로 인식되며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TV, 인터넷 등 어딜 보나 인셉션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아무도 대수롭지 않다. 이러한 얘기를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알아도 그만큼 영화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니 잘 만든 영화로 평가받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들에게 인셉션이 표절 영화라고, 어딘가 이상하지 않냐고 외쳐본들 돌이나 맞지 싶다.

 

 

 

 

 

 

 

 영화로 얘기를 했지만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은 내게 딱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었다. 보고 나서는 머리를 맞은 것 같기도 했고, 많은 생각에 들기도 했다. 가볍고 따뜻한 문체지만 나의 기준에서 넘어가기 어려운 부분이 드러날 때마다 쉬이 마음을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대표적인 얘기로는 앨리스에 대한 것을 들어볼 수 있겠다. 솔직히 앨리스를 다룬 챕터에서 저자 루이스 캐럴(찰스 럿위지 도지슨 Charles Lutwidge Dodgson)과 현실의 소녀 앨리스 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주 약간의 기시감이 들었고 마음이 탁하다 못해 이렇게 느껴지는 건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불길한 예감에 대해 콕 짚어 주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들의 행간을 주의 깊게 읽은 분들이라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p. 66

 

 

 

 하. 정말 기분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보다. 앨리스뿐만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과 긴밀한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얘기, 그가 사진을 찍겠다며 앨리스를 집으로 불렀지만 앨리스의 부모가 단호하게 거절하기 시작했다는 얘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죽은 후 일기장과 기록물을 태워버린 그의 가족들까지. 진실은 작가의 말마따나 아무도 모르고 영원히 모르게 될 수 도 있다. 그래도 이제 확실한 것은 앨리스를 다시 읽더라도 머릿속에 점철된 기분 나쁜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슬프게도 나는 이에 예민하고 불편한 사람이니까.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 정말 웃기는 게 옛말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으면서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 웃기다. 낭만적인 내 기억들을 지켜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진실을 알고 나의 도덕에 맞추어 사는 것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겁쟁이라서 매트릭스를 볼 때마다, 나라면 진실을 알게 되는 빨간약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는 파란 약을 삼킬 거다라고 계속 다짐해왔지만 현실에선 왜 겁도 없이 빨간약을 집어 들고 쓰디쓴 마음에 몸부림치고 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우린 어른이니까. 빨간약을 들고도 눈물만 흘리지 않을 만큼 자라왔으니까. 용기 있게 비화에 다가가 보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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