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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by 민시원 2020.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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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Louis Stevenson :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2013). Changbi Publishers

 


 

 

 

 

뭔가 신기한 느낌. 말할 수 없이 새롭고, 바로 그 새로움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달콤한 감각을 느꼈다.

 

무모한 충동,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처럼 맘껏 달리는 무질서한 감각적 이미지의 흐름,

도덕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감, 알지 못할 그렇지만 순진하지 않은 영혼의 자유가 내 내면에 있음을 의식했다.

p. 100

 

 

 

 

 최근 그런 일을 겪었다. 고열에 시달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던 경험.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몸도 내 맘같이 움직여주지를 않았던 게 기억이 난다. 작가에게 이러한 기점이 필요했던 것일까. 스티븐슨이 표현한 지킬과 하이드의 경계에는 특수한 장치가 필요했다. 지킬이 제조하여 들이킨 약물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향정신성 약물 정도 될까. 소설적 표현에 빌어 지킬과 하이드의 외관을 전혀 다르게 설정하긴 했지만 말이다. 덕분에 지킬과 하이드의 형상을 전혀 다른, 극단의 것으로 상상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은 뭐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지만 과학을 공부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에는 순수한 호기심이 있었다. '인간의 정신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였다. 너무도 알기 어려웠고 밝혀진 게 없어서일까 그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인간의 정신은 뇌의 작용에서 비롯되며 그 전기적 신호의 산물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갖게 된다'라는 정도의 사실 뿐이었다. 그래, 이게 내가 가질 수 있었고 지금껏 간직해온 진리였다.

 

 사실 그래서 이게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는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을 느꼈을 땐 너무 놀랐고, 불쾌한 부분도 있었다. 함께 생물에 대해 공부하는 생물학도임에도 강의의 토론시간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간의 정신이 마음에서 나온다며 가슴 부분에 손을 얹던 그 모습에 마치 심하게 체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람의 정신이 심장에서 나온다고?

 

 나참. 어이가 없다 못해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어떻게든 상대방과의 쟁점을 만들어서 토론을 진행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이기에 억지로 짜낸 말이었기를 제발 바란다. 근육 덩어리인 심장에서 정신이 비롯된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훗날 어떤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이걸 뒤집게 되는 날이 오면 사과하겠지만 이건 현재 분명한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저명하신 분들의 연구에서 나온 결과에 따라 밝혀진 것이란 말이다.

 

 

 

 

 

 

 이건 사실 쓸데없는 이야기였고 책에서 궁금했던 건 정신의 분리 과정이다. 현재는 신경, 정신에 대해서 하나의 육체에 다른 인격이 생길 수 있음이 사례 연구로 파악되었다. 실제 다수 확인된 케이스로 어떠한 요인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일반과 차이를 자아내는 일이 생겼고, 결과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인간 정신에 대한 연구는 꽤나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다. 대체로 많이 알고 있음 직한 것을 예로 들자면 머리에 쇠파이프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환자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사건. 어떠한 외상에 의해 뇌까지 영향을 미친 손상이 곧 정신적 변이를 나타낸 것이다. 이 외에도 질병에 의해서든 사고에 의해서든 뇌에 손상이 생긴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사례들이 많이 보고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은 정말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뇌에 의한 단순 전기 신호의 결과라고 하기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감각은 너무나도 예리하고 고차원적인 것이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태어나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하나 둘 기억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렇게 쌓인 기억들에 의해 인간적인 행동방식, 신념, 사고가 생겨난 것일까.

 

 

 

 

 

 

 

 스스로를 표리부동한 인간이라고 표현했던 지킬은 인간이 가진 정신 중 가장 고매한 것의 표상인 '박사 지킬'의 모습만을 남기고 악함을 모아 분리시키고자 했다. 분리는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하이드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표출되어 거리낄 것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남아있는 지킬만이 하이드를 의식하며 서서히 커져가는 하이드의 존재에 대해 불안해할 따름이었다. 선함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후련했던 시간도 잠시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이 저지르는 일에 대해 번뇌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그렇담 완전히 선함과 악함이 분리될 수 있었다면 지킬에게는 조금 더 행복한 시간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이드가 한 일에 대해 완전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하이드 역시 지킬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  각자로 갈 때까지 갔더라면. 아마 하이드는 이렇든 저렇든 악행을 일삼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가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계속해서 무뎌지는 것들을 벗어나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을 테니. 지킬 역시 하이드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알 길도 없고 그저 편안해진 마음을 따라 평소 같은, 존경받는 지킬의 안위가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금의 알 수 없는 불순물은 미처 거기까지의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킬이 만들어가고자 했던 속 시원하고 적절히 타락한 일상은 정말 꿈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족쇄에 다시 채워진 것만 같다. 죽을 때까지 우리 역시 어떤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할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게 싫으면 오지에 동떨어져 살아야 하는 거겠지.

 

  의도적으로 정신적 붕괴를 일으키고자 했던 지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궁금해졌다. 정말 이렇게 인간의 뇌를 더 이해하게 되어서 정신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되는 게 가능해질까. 앞서 말한 기억에서 정신이 비롯되는 것이라면 좋지 않은, 없애고 싶은 기억의 일부를 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상실된 기억을 가진 나를 온전한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정말 극단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나의 성격을 개조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 편리하긴 할 것이다. 까칠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바꾸어 선한 것들로만 남겨두게 된다면 어쩌면 늘 행복하고 의롭고 이상적인 나날이 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기이하고 넌덜머리 나는 것이, 모두가 하나가 된 것 마냥 착함의 크고 작기만 다른 인간들이 늘어난다면 복제인간과 다를게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년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선악의 괴리에 머리를 싸매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이 안타깝게 한다. 그것이 이들 인물에 대한 느낌인지 다가올 내 미래에 대한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늙어서는 나와 밖의 것들에 초연해져 달관할 수 있게 되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건만 속 알맹이는 그대로 연약한 상태로 유지가 되는 건가 보다. 내가 지금 깨쳐야 하는 일들을 그저 한 없이 미루는 것뿐인가.

 

 

 

 

 

 

나는 혐오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뛸 듯이 반가웠다.

 

내 눈에는 거울에 비친 이 영상이 정신적으로 더 활기차고,

지금까지 내가 내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부른 불완전하고 분열된 생김새에 비해 더욱 완전하고 통일된 모습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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