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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이단자들 - 스티븐 내들러/벤 내들러

by 민시원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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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n Nadler, Ben Nadler : Heretics!; 철학의 이단자들 (2019). Changbi Publishers

 


 

 

 

 

신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있는 이 세계를 선택한 것을 보면,

아담과 이브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자유로운 선택이었어요.

p. 88

 

 

 

 책을 읽고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라이프니츠와 다른 아르노의 생각이 나의 것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것도 그나마. 라이프니츠는 애초에 여러 개의 세계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 세계 안에서 아담과 이브는 자유롭게 각기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하나의 세계를 알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신이 이 세계를 선택하기 이전에는 수많은 가능세계가 존재하지만 신의 선택이 있음에 따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하나의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세계들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한다. 평행우주 같은.

 

 아르노는 라이프니츠가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가정한 이상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행동에는 선택권이 없게 되고 곧 인간이 어떠한 자유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 반박했다. 라이프니츠의 생각은 진화의 과정과 유사하다. 진화에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연환경에 대해 잘 살아남는 것들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수를 늘려 적응을 한 결과가 이어져 진화의 과정이 된다. 이때 돌연변이는 이상이 있는 것들일 확률이 높지만 적은 비율로 자연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특성을 가진다면 그것들이 살아남아 진화의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수많은 세계의 아담과 이브를 한 종의 생물이라고 생각해보자. 진화로 빗대어 봤을 때 하나의 특수한 개체가 선택되게 만드는 것이 환경이라면, 라이프니츠의 사상에서는 환경이 곧 신인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결과적으로 선택된 것은 단 하나의 세계이다. 신이 무한히 많은 가능세계를 창조했음에도 선택된 것은 단 하나이다. 라이프니츠의 생각에는 내가 신을 믿지 않는 이유에 정확히 대립하는 부분이 있다. 수년 전에 중학교에 다닐 시절에 내 앞에 앉은 친구는 항상 시험을 보기 몇 분 전 신께 기도를 드렸다. 다시 몇 년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 친구는 모의고사를 보기 몇 분 전 그대로 똑같이 기도를 드렸다. 나는 늘 궁금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대학에 가지 못하면,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되면, 빚더미에 앉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고 실패를 맞이하면 끊임없이 자책을 한다. 괜히 그 선택을 해서, 그렇게 하지나 말걸. 열심히 기도를 하던 친구는 실패를 맛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신을 원망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더 열심히 기도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려나? 신을 믿지 못하는 것은 신이 있다면 그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집안에서 평안히 글을 써내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밤은 너무도 무서운 시간일 수 있고, 너무도 배고픈 시간일 수도 있고, 끔찍한 절망과 고통의 시간일 수도 있다. 라이프니츠의 말마따나 신이 선택한 최선의 세계가 지금의 이 세계라면 그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이프니츠는 「신정론」을 펼쳤다. 이 세계가 최선으로 선택된 이유는 가장 단순한 법칙으로 가장 풍부한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최선의 세계라고 할지라도 그 세계의 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결코 그 세계 안의 개체들에게 최선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선의 세계에도 결함이 있는데, 그 결함 덕분에 완전함이 더욱 돋보인단다. 잔인하다. 내가 지나치게 공감을 잘하는 것인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이성적 판단을 못 내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잔인한 관점이다. 신이 악을 원해서 이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허용할 뿐이라고. 신은 자신의 지혜와 정의로 이 세계를 선택하였고 그 속에서 모든 것들은 가장 단순하게 가장 풍부한 결과를 만들어가기 위해 움직인다. 그렇다면 신은 이 모든 상황을,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순간을 모두 보았단 말인가. 우리의 행동이 그 순차적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설계된 것이고(그렇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신의 선택에 의한 최선의 세계 안이기 때문에 설계된 행동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갑자기 글을 쓰다 말고 다 그만둬버리면?) 이유가 있어서 나온 결과들이라면 또다시 각 세계 속 존재들은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그의 주장에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어찌되었든 라이프니츠의 설명이 맞다고 치더라도 또다시 문제가 생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자유에 따라 선택해서 먹은 것처럼 실체들이 자유의지로 행동한다는 것은 실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허용하지 않는다(p. 92). 예로 나온 것을 얘기하자면 내가 친구와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약속한 날이 되면 친구는 나와 만나기 위해 그 장소로 나온다. 이렇게 되면 친구에게는 '나'의 의도가 전달되었고 그것이 친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게 된다. 이는 곧 실체 간의 상호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반박에 라이프니츠는 단순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 상관관계는 상호작용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은 실체들이 상호작용을 한 것이 아니라 신이 그렇게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라고. 신이 창조한 세계에는 예정조화가 있을 뿐이라 했다. 예정조화가 있기에 상호작용이 있지 않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일 뿐이라고. 그의 의견에 따르면 내가 친구를 불러낸 것은 분명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이다. 다만, 내가 친구가 약속 장소로 움직이게끔 영향을 미쳐서 그 결과로 친구가 나온 것이 아니라, 신이 친구가 약속 장소로 나올 것이라는 행동을 예정해놓은 것이기에 그에 맞춰 친구가 움직인 것이라는 거다. 신이 개입했다. 내 친구의 행동을 예정조화에 맞추기 위해서. 그렇다면 다시 또 이 세계 속 실체들의 자유는 부정된다.

 

 

 

 

 

 

 

 한참 복잡한 얘기를 했으니 리프레쉬해서 이번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론」를 얘기해볼까 한다. 라이프니츠는 실재하는 것들 중 실체하는 것들을 정의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활동성과 자발성을 얘기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단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실체는 단일한 하나의 실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라이프니츠는 물질적인 부분을 벗어나지 못하면 실체를 정의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정신적인, 영적인 실체만이 세계를 구성하고 그것이 바로 '모나드'라고 하였다. 정신적인 실체인 모나드가 모여 자연의 실재를 이루는 것이고 진정 실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동물, 식물, 인간 등 모든 실체는 모나드를 가진다고. 그럼 C. elegans도?

 

 

 

 

 

 

 

 책만 읽었을 뿐인데도 머릿속으로 대토론을 벌이고 온 것 마냥 진이 다 빠진다. 이 책을 영화로 비유하자면 인터스텔라, 인셉션, 매트릭스, 터미네이터와 유사하다. 내용이 유사하다는 게 아니라 정말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들이라는 점. 딱 내가 싫어하는 것들. 근데 그게 참 희한하다. 머리를 싸매고 입으론 욕을 하고 있어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발을 담궈보고서야 괜한 짓을 했다며 후회를 해대지만 책을 덮고 나서 느꼈다. 웬만한 교양강의보다도 좋은 책이었다고. 전공책을 볼 때보다 자발적으로 절로 공부를 하게 되는 상당히 즐거운 책이다.

 

 

 

 

 

 

 

다른 것들은 양태나 속성으로 실체안에 존재합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세계에는 물체나 영혼 같은 수많은 실체들이 있습니다. - 데카르트

오직 신 또는 자연만 그 자체로 실존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신 또는 자연 안에서 실존하지요. - 스피노자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은, 사실상 무한하게 많은 실체들이 있습니다. - 라이프니츠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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