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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김예지

by 민시원 202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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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KOPILUWACK) : 저 청소일 하는데요? (2019)

 


 

 

 

 

 

"우리는 다 다르게 살아간다"

 

 

 

 우리는 다 다르게 살아가지만, 대개 같은 것들을 바라보며 살곤 한다.

 

 일정한 틀이 있는 사회 안에 살기에 사람은 일을 하여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 그 길에 정답은 없지만 '보편적인 이상'은 존재한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회사에 입사하는 것,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 높은 보수를 받는 것. 남부끄럽지 않은 명함을 내밀며 풍요롭게 사는 삶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머릿속 깊이 박힌 '꿈'이 되어 있었다. 최근엔 그래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 즐기고 잘하는 일 등 다양한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렇게 성공과 가치의 기준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나는 꿈을 물을 땐 되고 싶은 직업을 꼽기 바쁜 세대의 한 사람으로 살아왔고 꿈을 좇아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다수에 속해있기 때문에 여전히 같은 고민을 그리고 있다. 평범한, 보통 같은 불분명한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어렴풋이 옆을 따라다니는 그 평범의 축에 들어가고자 오늘도 끊임없이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도 종종 너무 걱정을 사서 하는 게 아니냐라는 말을 듣곤 하는 나는 늘 삶을 평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왔다. 그들도 나름대로 고민 걱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려 하지만 그게 사람 마음처럼 쉽게 이해가 되나.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취업이 멀지 않은 요즘은 정말이지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나란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고민거리는 다 끌어안고 사는 사람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이 나날이 더해지다 보니 근래 들어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순간을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명상을 하며 일부러 생각을 비워내는 거라면 참 좋겠지만 그것과 달리 전원이 꺼진 것 마냥 갑자기 무기력해져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삶을 일직선으로 표현했을 때, 특정한 시기가 다가오면 이런 침잠이 심해지곤 했는데 어릴 적엔 새 학기가 그랬고, 고등학생 땐 입시가 그랬고 지금은 취업이 그렇다.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예전 고민의 무게는 차츰 덜어졌고 그렇게 많이 의연해진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다른 고민거리들에 시달리는 걸 보니 마냥 그런 건 또 아닌가 보다. 오히려 머리가 크며 보이고 들리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짓누르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랄까. 취업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분명 새로운 걱정 고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싶다.

 

 계속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굉장히 우울하고 자존감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 내 안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그대로 꺼내어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이게 진짜 나 자신에 가깝다. 여러 이유로 여러 SNS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익명이기에 솔직할 줄 알았던 처음의 기대와 달리 현실과 다를 바 없이 또 다른 프레임을 자신에게 덧씌우고 있는 스스로에 답답함을 느껴 만들어낸 게 이 공간이니 말이다. 느낀 것 그대로, 나를 그대로 보여내기가 이렇게 힘든가? 분명 책을 들고 왔는데 또 한참을 돌아왔다. 계속하다간 모두 에게 우울을 전파시킬 것 같으니 이만 책 이야기로.

 

 

 

 

 

 

 어쨌든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참 감사한 것이다.  불안하고 고된 나날들과 그것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과정들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유리, 쿠크다스 보다 못한 모래알 멘탈을 가진 나에겐 좋은 선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희망 같은 거랄까.

 

 지금 그 뒤를 따르고 있으니 작가님이 지나온 시간들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을지 공감이 된다. 작가님이 겪은 힘겨웠던 순간이 책에 표현되어 있지만 그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다. 작가 본인의 삶이지만 저 멀리 서서 관조하듯 담담히 표현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쉽지 않은 선택을 했고 막막한 순간의 연속을 보냈지만 그래도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하다는 그 글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버티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지내보니 괜찮은 삶이었다'하고 회고하는 말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kopiluwack

 

 

 예지님은 목표를 위한 좋은 수단이 되기에 청소일을 시작해서 그 덕분에 지금,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전했다. 책을 읽은 뒤 종종 예지님의 인스타그램(@kopiluwack)에 들어가 보곤 한다. 계속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지 그저 그게 궁금하고 용기를 받고 싶어서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것이 잘 되어 본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덕분에 여러 새로운 방향의 일을 하게 되셨다 했는데 삶이 풀어져 나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참 신기하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라오는 것들로 보아 다음 책에는 조금 더 무겁고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길 것 같은데 우울함을 직면하기가 조금 두렵지만 작가님의 책이기에 기대하고 기다려보려 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님의 책이기 때문에 이렇듯 깔끔하고 작가님만의 감성이 담겨있는 그림체를 볼 수 있다. 듣자 하니 요즘엔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를 하고 계시다고. 정말 참여하고 싶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 고민이 있을 때도 있었다 하셨는데, 저는 정말 작가님 그림들 좋아해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느낌. 이렇게 써서 알진 못하시겠지만 계속해서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있다는 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작가님도,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일 하는 사람들도, 나도, 그냥 모두 다 매일 매 순간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내일은 조금 더 작은 기쁨, 행복이 깃든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해야 하는 일도 있고 먼 미래를 위해서 선택해야 되는 일도 있다. 

 너무도 막연하지만 조금은, 그래도 조금은 앞을 향해 가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은 아무래도 끊임없이 되뇌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그러니 나 자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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