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by 민시원 2020. 1. 26.
반응형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 The Great Gatsby (1925)

 


 

 

낙엽 더미가 매트리스와 부딪치자 컴퍼스로 그린 듯한 붉은 원이 물 위에 생겼다.

우리가 개츠비를 떠메고 집으로 올라간 뒤, 정원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윌슨의 시체를 발견했다.

학살의 종결이었다.

p. 189

 

 

 대학에서 세미나를 위해 읽었던 책이다. 가볍게 집어 든 시작과 달리 책을 훑어내리는 사이, 어느새 깊이 침전되어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질문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왜?'

 

 왜 그들은, 왜 그렇게, 왜? 도대체 왜.

 

 방법이야 어떻든 개츠비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선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부와 명예는 단지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자신이 그렇게 원하고 그리워했던 그녀, 데이지를 위함이다. 성공한 개츠비의 모습을 이끈 배경엔 바로 그 데이지를 위한 순수하고 진심 어린 마음만이 있었다. 어린 시절 뜨겁고 애틋했던 마음을 간직한 남자의 사랑은 그대로 올곧게 뻗어져 데이지를 찾았고 결국 그녀에게 닿았다. 비록 데이지의 마음은 그의 것과 같지 않았지만.

 

 아직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 그들이 보인 모습들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말이다. 누군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내 삶마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던질 수 있는 그런 것들. 데이지를 바랐을 뿐인 개츠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이렇게 공허하고 저려오는데 그가 느낀 감정들이 어땠을지는 차마 알기가 두렵다. 테라스에 서서 자신이 벌려놓은 파티를 관망하는 그의 모습에선 헤아릴 수 없는 고독함이 느껴진다.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

 

 술을 마시고 나태하게 즐기고 노니는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마음껏 뽐내며 자유로이 살아간다. 조금 동떨어진 관찰자 닉에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막무가내이며 속내를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닉 역시 그들과 한 공간에, 같은 시간에 존재한 어리숙한 한 젊은이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개츠비의 마지막을 지키며 느낀 허망함을 곱씹으며 개츠비의 낭만을 이해하게 된 그런 사람.

 

 앞뒤를 따지고 잴 것도 없이 사랑하는 데이지를 위해선 누구보다 먼저 나서는 개츠비의 모습에 아이러니하게도 낭만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말그대로 열렬하고 불같은 마음이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게 그녀만을 바라고 쫓아 성공한 인물로 톰과 데이지 부부의 이웃이 된 개츠비에게 남은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죽은 개츠비를 조문하지도, 꽃 한 송이 보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쓸쓸함에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비져 나온다.

 

 1920년대 물질주의 사회의 무뎌진 도덕관 속에서 자유로워보이는 이들은 사실 사랑이라는 하나의 매듭에 단단히 얽매여있다. 재화의 가치는 인간에게 쓸쓸함과 고독을 안겼다. 그들은 지루함을 참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 형태가 어떠한 것이든 끊임없이, 끊임없이 사랑을 하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감정은 이성적인 인간을 돋보이게 만드는 축복이자 파멸로 이끄는 재앙이었다. 형태와 대상은 달라질지언정 계속해서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며 사랑해왔다. 그 사랑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생물학적 이유를 배제하고 인간은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고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누군가를 죽이는 원인도 된다. 길거리에서는 사랑노래가 흘러나오고 티비에서는 연애 프로그램이 나오며 극장가에서는 멜로 영화가 흥행한다. 사랑한 만큼 성숙해지는 것. 미성숙한 나는 나의 이성을 흔들 사랑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아파하며 사랑을 하는지. 왜 사랑 때문에 사람이 망가져가고 변해버리는지 말이다.

 

 

 

"딸이라서 다행이야. 이왕이면 아주 바보가 돼버려라. 이런 세상에선 바보가 되는 게 속 편하다. 귀여운 바보." 

p.24

 

 

 

 개츠비를 바라봐주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희생한 그를 돌아보지도 않는 데이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순수한 개츠비의 사랑과 달리 물질적인 것에 빠져버린 모습도 그랬다. 그런데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닉의 시선에서 서술한 이 책으로 온전한 데이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사실 그렇다. 개츠비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안타깝게 여긴 닉에게 데이지는 얄미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줄곧 허영심 많고 몽환만을 그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딸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게 세상을 살기 편하다 말한 데이지의 뜻은 어떤 것이었을까. 예쁘고 화려하지만 백치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데이지의 모습은 그녀 본인인 것일까 그녀가 의도한 것일까. 사랑했던 이의 행방을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그녀가 안정된 사랑을 찾아 떠나기까지 어떤 결심을 해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마저도 안정된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데이지가 느꼈을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을 테다.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은 마치 술에 취한 듯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오로지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 상대를 생각하며 자신을 감추는 것에 익숙한 지금 달리 직설적이고 솔직한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어떤 방법이든 진심이 통하게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엇갈리고 말지만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그뿐이기 때문일까. 허상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성립해가는 과정. 어긋나는 타이밍과 엉켜버린 관계 속의 모든 인물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름답고 찬란한 황금빛의 데이지, 데이지와 만나 초록색을 이루고 싶었던 푸른빛의 개츠비, 거만하고 짙은 붉은빛의 톰. 개츠비는 늘 정원 너머의 초록색 등을 바라보고 서있었지만 데이지는 붉은빛에 휩싸여 분홍색 구름을 쫓아갔다.

 

 20대에 책을 읽은 지금, 내가 감성적인 건지 책이 나를 감상적이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비슷한 길을 걷고 있을까. 그땐 개츠비를, 개츠비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게 될 수 있을까.

 

 허망하고, 또 허망한 개츠비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