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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 The Intern, 2015

by 민시원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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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12세 관람가

코미디

폭력성 ☆

선정성

공포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주의 부탁드립니다.]

 

 

 

 영화를 좋아한다곤 못하겠는데 그나마 좋아하는 분야를 꼽자면, 아니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이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장르가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완벽한 개그의 느낌은 아니고 조금 더 세분화시켜보자면 드라마적 느낌이 강한 영화다. 누가 봐도 능력 있고, 젊고 유능한 30대 CEO 줄스는 대외적으로 완벽한 커리어를 쌓고 있다. 그런 그녀의 조금 더 일상적인, 개인적인 삶을 시니어 인턴 벤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영화의 주 전개과정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영화 인턴은 가볍게 볼 수 있는 따뜻한 동화 같은 가족영화다. (불륜 소재가 포함되어 12세가 된 듯 하니 가족끼리 볼 때는 이 점을 고려해야 할 듯하다. 외도에 대한 묘사로 가벼운 키스 장면이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 같은데 영화의 내용을 망칠만한 부분은 아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을 보자니 할아버지 생각이 안 날수가 없더라. 벤은 마치 이상적으로 나이를 먹은 노인의 표상 같은 존재이다. 자신이 겪어온 세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말 그대로 삶의 지혜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이 일하던 공장의 자리에 세워진 온라인 쇼핑몰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지원을 하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직원들 사이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어가 동료가 된다. 구식이지만 클래식한 젠틀함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는 훌륭한 동료였다가도 직원들이 조언을 구하고 기댈 수 있는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도 한다. 완전히 격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감, 매너를 담은 그의 태도가 더더욱 사람을 불러 모으는 듯 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사람이 정말 저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나 역시 그처럼 나이를 먹어갈 수 있을까'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얼마 전만 해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런 것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스무 살이 지나고 친구들과 모여서 흘러가는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반 오십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하곤 했는데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게 참 지금 내 나이에 시간과 세월을 얘기하는 것이 우스워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쩌면 그런 것 아닌가. 자아를 갖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 모두는 나이를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은 인식하기 어렵지만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매해 조금씩 시간이 가며 느낀 건 우습게도 내가 점점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꼰대. 지금보다 더 어릴 땐 그 말조차 고리타분한 구식이라고 여겼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느끼기로는 참 그만한 말이 없는 것 같다. 정의감 넘치는 초등학생 시절엔 삼선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중학생들을 보며 그들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했었지만 어느새 슬리퍼는 내 발에 가장 편한 신발이 되었고, 중학교 시절엔 매주 음악방송들을 섭렵하며 모르는 최신 곡이 없었지만 이젠 신인 아이돌이 나오면 누가 누군지는커녕 그룹명 조차 생소해졌다. 고등학생 땐 대학만 가면 철학적이고 이상적인 나의 길을 걷는 성인이 될 줄 알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나는 현실과 너무 쉽게 타협하고 마는 사람이 되어 있다. 흘러간 시간은 변해간 나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래서 젊었을, 더 어렸을 세대와 멀어진다는 것이 꼰대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참 많이 서글프다.

 

 

 

 

 

 그렇다 보니 벤은 꼭 우상 같은 것이다.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지만 꽉 막혀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자신만의 철학에 사로잡혀 남들을 무시하지도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조금 느릴지라도 현대의 사람들과 섞여 SNS를 배워 가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요즘 것들은', '요즘 애들은' 이런 단어가 입과 머리에 붙는 순간 지독한 늙은이가 되어버릴 까 싶어 지금부터 조심하려 하지만 종종 어리고 젊은 그룹과의 괴리를 느낄 때 변해버리는 나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게 꼭 좋은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세월이 흘러 쌓인 지혜만큼 자신만의 개성적인 사고, 관념을 가지는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타적 인간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고집을 가지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보기 좋게 늙는다라는 것. 닮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는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벤을 보고 떠올려진 할아버지, 그분이 내겐 그런 존재이다. 90을 바라보는 연세의 할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손주들에게 용돈 챙겨주는 것이 기쁨이라시며 경비원 일을 나가신다. 서울 시내 길을 바라보며 할아버지께서 보고 듣고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일지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마냥 어렸을 나이가 지나고 명절과 기념일에나 할아버지를 뵈러 가면서 해마다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여전히 열려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태원을 걸으며 보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대해 한 소리 늘어놓는 게 아닌 자연스러운 요즘 애들의 문화를 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편견에 둘둘 쌓여있는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곤 했다. 나를 만드게 환경이라면, 아니 그 모든 바깥일로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계속해서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면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외향은 변하겠지만 내면은 열려있어 현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

 

 

 

 

 

 이렇게 내가 벤을 닮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줄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성공한 CEO라는 것을 제외했을 때 줄리는 가족과 동료 그 사이의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문제에 부딪히고 있었다. 커리어에서 성공을 쌓는다는 것이 곧 성공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정말 잘 보여주었다.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도 있을 테지만 사회에서 사는 이상 우리는 사람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 두 목표를 완벽하게 수행해다가는 사람이 산산이 부서지듯 탈진해버리기 때문일까. 완벽한 균형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요즘 또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건 '나'인 것 같다. 커리어와 관계라는 점에 너무 열중해 온 나머지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다 타고 남은 나 하나였고,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에 초점을 맞춘 개인적인 시각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 복잡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던 요즘 나는 적당히라는 말을 참 좋아하게 됐다. 물론 커리어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질 못했지만, 그것이든 사람 관계든 나 자신이든 그냥 그렇게 다 적당히 신경 쓰며 살자는 거다. 너무 깊은 고민과 매달리는 집착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줄리가 도달한 결론도 이와 같은 것일까? 줄리와 달리 난 성공한 커리어의 역사를 만드는 단계엔 가지도 못했으니 그저 그렇게 타협하는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일까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는 자신을 천천히 느리게 소진해야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눈길을 둘 수 있는 법이니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 한 십 년이 지나고 났을 때도 내가 이 마음을 유지하고 있을 런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나이 먹는 만큼 조금씩 더 지혜롭게 늙어가길 바라며.

 

 

 

 

 

The In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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